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삶
밀레니엄 시리즈를 쓴 스티그 라르손 스토리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가끔 우등생 콤플렉스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게 흠이지만. 또 불행히도 어떤 기본적인 윤리적 문제들에 있어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었다. 예를 들면, 워낙 관대한 성격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애써 그걸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여 합리화시키고, 나아가 용서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언어밖에 모르는 이 세상 야수들의 본질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남자 주인공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에 대해 내리는 논평이다.
주인공 미카엘과 작가 스티그 라르손 미카엘에 대한 묘사에서 스티그 라르손의 모습을 읽어내는 일은 다소의 과장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리한 일만은 아니다. 일단 미카엘이 일하는 잡지 《밀레니엄》과 스티그 라르손이 일했던 잡지 《엑스포》는 그 성격 면에서 유사성이 자주 언급된다. 두 매체 모두 공격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의 매체이며, 중년인 주인공의 나이가 비슷하며, 사람을 가리지만 목적한 취재대상에 대해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외압에 굴하지 않는 태도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미카엘은 ‘묘하게’ 여자에게 인기가 있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미카엘은 이혼 경력이 있고 딸을 하나 둔 아버지로 묘사되며 그보다 열 몇 살 연상의 유부녀, 상류층 출신의 유부녀, 딸 나이뻘인 여자까지 그에게 끌리고 그와 자고 싶어 한다.(실제로 그들과 잔다!) 스티그 라르손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18세 때 베트남전쟁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만난 동갑 여성 에바 가브리엘손과 사랑에 빠져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동반자로 지내왔다. 이 사실혼 관계는 결국 그의 사후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면 미카엘과 스티그 라르손 사이의 공통점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스티그 라르손은 가난했던 부모와 떨어져 외조부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반파시스트로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외조부는 스티그 라르손의 유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83년에 북유럽 최대의 스웨덴 통신사 TT에 입사하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일상에 스며든 파시즘을 경계하며 인종차별과 극우파, 스웨덴의 여러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잡지 《엑스포Expo》를 공동 창간했고, 1999년부터 죽기 전까지 《엑스포》의 편집장으로서 그의 신념을 관철시켰다. 그의 흔들림 없는 신념과 다양한 글을 통한 반파시즘 투쟁으로 인해 그는 반대파의 암살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왔기 때문에 에바 가브리엘손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실혼 관계를 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밀레니엄』의 출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

미카엘과 스티그 라르손의 공통점은 또 있다. 두 사람 다 범죄소설의 열렬한 팬이었다. 『밀레니엄』에는 미카엘이 범죄소설을 읽거나 인용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하는데, 실제의 스티그 라르손은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직접 범죄소설을 쓰기로 한다. 낮에는 진지한 반파시스트 저널리스트
로 활동했던 그는 오래 함께 해온 여자친구 에바 가브리엘손과의 은퇴 뒤 생활자금을 마련하기를 바라며 ‘밀레니엄’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에 집필을 시작한 그는 2년 만에 3부까지의 원고를 탈고했다. 그러고는 첫 두 권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출판사에서는 초고라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원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례적으로 3권 모두 계약을 했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하드커버 소설이 1만 부 정도 팔리면 환상적인 수준의 성공으로 볼 수 있었다. 스티그 라르손과 출판사는 첫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2만 부’라는 (결과적으로는 소박한 수치의) 기대치를 세웠다. 『밀레니엄』 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원고를 출판사와 손보는 데 8개월이 걸렸고, 당연히 2부와 3부 소설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 하지만 그는 TV쇼 출연이나 사인회를 비롯한 홍보 활동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책 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2004년 11월 9일, 담당 편집자였던 에바 게딘은 밤 10시경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스티그가 죽었다는 소식.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고작 50세였다. 그가 《엑스포》 사무실까지의 7층 계단을 오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회의가 열렸고, 책 세 권 모두 출간을 진행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9개월간의 산고를 겪고 『밀레니엄』 1부가 선을 보이자 즉각 반응이 왔다. 유럽 전역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가 번져갔다. 2007년에는 미국에서의 판권이 경합 끝에 크노프(미국 최고의 유서 깊은 문학출판사)로 넘어갔다. 홍보투어에 나설 작가가 죽고 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전작이 전혀 없는 작가의 첫 책이 거둔 성공이었다. 2008년 여름 미국에서 첫 출간된 『밀레니엄』 1부(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는 지금까지 900만 부 이상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