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가 여자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연중에 당연히 전쟁을 다루니까 남자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여자라서 좀 놀랐다. 이름이 카토 요코인데 왜 짐작도 못했을까? 일본 이름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대충 보고 지나가게 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가 싶다. 저자는 1960년 생으로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교수로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원본은 일본에서 2009년에 나왔다. 아사히 출판사에서 펴냈다. 2007년 마지막 주에 5일간 일본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토대로 했다. 1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해문집에서 2018년 1월에 나왔다. 거의 10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경어체로 쓰였고, 질문과 답변도 그대로 기록했다.
책의 부제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다. 책은 일본이 개항한 이후에 벌인 5개의 전쟁을 살피고 있다. 책은 서장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생각한다>에서는 루소와 E.H 카를 인용하면서 전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다룬다. 1장은 청일전쟁, 2장은 러일전쟁, 3장은 제1차 세계대전, 4장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5장은 태평양전쟁을 다룬다.
일본은 1868년의 메이지 유신 이후에 처음으로 1894년에 청일전쟁을 벌여서 승리한다. 이로써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화이질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1904년 러시아와 벌인 러일전쟁으로 구라파의 국제질서에도 강대국의 하나로 인정받는다. 이후에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난 뒤에는 만주를 집어삼키고 중국을 침략하며 마지막에는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을 상대로 하여 태평양 전쟁까지 벌인다. 한마디로 일본은 전쟁을 통해서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서 망한 국가였다. 2차대전의 결과 패전국이 된 일본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무력을 포기한 댓가로 경제적 번영을 약속받았고, 이제는 일본과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중국이 다시 일어서기 전까지였다.
이 책은 이런 전쟁 자체를 다룬 책이 아니다. 전쟁의 배경과 결과를 자세히 다룬다. 그래서 전쟁사만큼 흥미롭지는 않지만 왜 그런 전쟁이 일어났는가를 알게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책에서 인상적인 사람은 두 사람이다. 영국의 케인즈와 중국의 후스다. 케인즈는 1차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영국의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한 사람이다. 그는 2차대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예견했다. 독일에 대한 과도한 전쟁배상금이 결국 독일을 2차 대전이라는 전쟁으로 이끌게 되었음을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에서 논증한다. 후스는 중국이 일본의 할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장제스에게 역설한다. 할복을 할 때는 할복한 무사의 목을 뒤에서 쳐주는 다른 무사가 필요하다. 중국은 스스로 국가적 할복을 선택한 일본을 뒤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하면 지구전으로 항전하며서 깨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그게 전 세계의 동정을 불러일으켜서 미국과 영국 등이 중국을 돕게 되리라는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 되었다. 이때 왕좌오밍은 다른 논리로 반박한다. 물론 일본을 이길 수 있겠지만, 그 동안에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승기를 잡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그래서 왕좌오밍은 일본과 협상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역시 그대로 되었다. 결국 왕좌오밍은 중국에서는 민족을 배신한 정치가로 낙인찍혔고, 후스는 공산당에 쫒겨 대만으로 옮겨갔다.
근대에 일본이 일으킨 동아시아의 전쟁 전체를 조망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다. 다만 전쟁 자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