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연극 <백무동에서>를 보고 이음아트에 들렀을때 입구에서 이 책과 마주쳤다. 편혜영 작가의 작품들을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여기저기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만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날 그렇게 처음 만난 것이다. 그 날 본 연극과 통하는 면이 있었으니 인연이라고 하면 인연이었나보다.
올 하반기에는 여러 작가의 단편집을 읽었는데 이렇게 낯선 느낌은 처음이었다. 낯설다는 것은 매력적인 동시에 불편함을 동반한다. 편혜영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를 나열해보자면, 동물, 밤, 소리, 일상, 불안, 우울, 공포, 엽기 정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느꼈던 그 당혹함과 비슷했다고 해야하나. 차라리 피가 칠갑을 하는 공포물이었으면 덜 섬뜩했을지 모른다.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하는 순간 소름 돋는 공포는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 속의 나는 그저 무력하고 힘없는 기계의 부속품이다. 탈출하고만 싶은 이 순간을 나의 의지로 헤쳐나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거기에서 불안과 공포와 무기력함을 느낄 뿐이다.
편혜영. 잔인한 작가다. 엽기적인 작가다. 불편한 작가다. 신선한 작가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기대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