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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짐승의 방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발전상의 인물별/시대별로 살펴보는데,

경제사상사에 관심있던 나도 잘 모르는 인물들도 많고 설명도 각 챕터별로 꽤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읽을만한 책(물론 교양서 수준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각 인물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리 만큼 자세하고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챕터 후반부에 가면 책장을 마구 넘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뒤로 갈수록 생각이 바뀌어갔다.

 

이 책은 그 인물이 정말 주장했던 이야기, 중요 사상을 그대로 담아낸 뒤,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재해석하는 데 충실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그 인물의 저작, 주장, 삶에서 저자가 원하는대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의도적으로" 

선별해내고 계속 강조하고 반복한다는 생각이 점차 또렷해졌다.

물론 한 인물을 일관된 주제에 담으려고 할 때는 당연히 의도적으로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 특정부분이 중요한 것인지, 그 부분을 강조함에 있어서 다른 주장들

(문헌학적이든 이론적이든 정치적이든)은 없었는지, 있다면 왜 그런 주장들이 잘못되었는지를

적어도 아주 조금은 다뤄야 공정하다고, 설득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인물에게 A라는 면과 not A 라는 면이 공존한다면, not A는 한두번 언급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A라는 면만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not A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과 반론은 싸그리 무시해버린다.

저자가 무식해서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차라리 인물의 삶 자체를 그렇게 다뤘다면 모를까, 사상을 그런 식으로 다룬 것은 상당히 문제가 크다.

그리고 그 인물의 다른 면, A와 다른 B,C,D,E 등의 주장은 싸그리 무시해버린다. 

 

예를 들면,

스미스와 리카도가 노동가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구성한

노동가치론의 한계 때문에 이론에 모순이 생긴다는 점 등은 전혀 다뤄지지 않고나서

나중에 칼 마르크스 챕터에서 '그 시대에 누가 노동가치론 을 주장했는가?'

라는 몰역사적(몰사상사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 이론에서 노동가치론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말이다. 게다가 마르크스가 '자본'을 출판할 시기, 그리고 그 이후 시기에

신고전파도 발전했지만 그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구성한 노동가치론도 이론적 황금기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전형논쟁(번역이 '전환의 문제'였던가-_-.. 번역도 약간의 문제가 있음)과 현재 '신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뒤메닐과 폴리의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모를테지만. 그리고, 당연히 제대로 모르면 말을 말아야 할 것인데도 말이다.

다른 예도 있겠지만, 마르크스 부분이 역시 압권이다.

 

일단 마르크스를 다룸에 있어서 '청년기의 생각이 일생 내내 지속되었다'라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이에게도 적용하기 힘든 주장을 해댄다.

일단 그가 청년기의 마르크스에 대해 어떻게 해석했든지 간에

(즉, 마르크스의 열정적 성격과 젊은 시절 낭만주의적 시를 꼬투리잡아서

'낭만주의'자로 모는 건 둘째치고. 그렇게 치면 철학과 예술을 사랑한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도 낭만주의자겠다? 해석의 파렴치도 정도가 있어야지)

아무 인물에나 그런 도식을 적용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그의 저작은 알튀세르주의처럼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하지 않더라도

공산주의자 선언과 독일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전기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후기로 나누는 것은 아주 일반화된 것이며,

문체나 내용 또한 혁명과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한 주장을 중심으로 '매우 크게' 바뀐다.

 

마르크스를 낭만주의자(마지막 구절의 '횔덜린')라 주장하면서 '유태인 문제에 대한 에세이'를

특권화(챕터 내내 중심적으로 다뤄진 것은 오로지 이 에세이 하나 뿐이다)하면서

그와 엥겔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마르크스주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 이론은 알텐데 말이다.

제대로 다룰려면, 왜 과학적이지 않은지에 대한 답변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저자는 별 근거없이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책 어디에도 제대로 된

'낭만주의'의 이론적, 정치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비판한 수많은 (엥겔스의 표현으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가 어떤 점에서 밝히기라도 했으면 재미있다고 봐주기나 했을텐데.

마르크스가 낭만주의적 사회주의(어찌보면 아나키즘도 그 일부)를 얼마나 비판했는지

저자는 아예 검토조차 안해본 것 같다.

제대로 쓰인 평전이나 개론서만 읽어도 어디에나 나오는 것을.

 

아, 물론 '자본'을 자본주의의 참혹한 일부분을 묘사한 책이라고 평가한 것은 정말 인상깊었다.

저자가 말하는 청년기의 마르크스는 이미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어느 시대보다 압도적인 생산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부분을

깡그리 저자가 잊은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더욱이, '자본'이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을 얻은 1장 1-3절의 순전히 개념적이고

경제학적 내용들로 가득찬 부분까지 단순한 '묘사'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또, '자본'에서 많은 부분을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는 데 할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사적 사실조차도 마르크스는는 기존 고전경제학 비판을 통한 자신의 분석을

행하고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만 깡그리 잊는다면 말이다.

 

덤으로 마르크스를 간략하게 다루는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마르크스가 임금철칙설을 주장했다는 사실도 여지없이 나오는 있다는 것도 확인하자.

임금철칙설이란 고전 경제학에서 받아들여졌던 주장으로

노동자의 임금은 생존수준까지 하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 과소소비로 공황이 발생하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붕괴하게 된다는 것도 어느 덧 함축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실제 현실에서의 임금결정은 계급 간 정치적 투쟁(힘싸움)의

결과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또한, 다른 저작에서 그는 임금철칙설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이런 문제는 비단 마르크스 챕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의 경우 저자가 의도적으로 (또는 무식해서)

그 인물들의 다른 주장을 살펴보지 않은 것이 크다고 한다면,  

마르크스의 경우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일부러 왜곡했기 때문에,

그리고 읽으면서 화가 나서 책에 줄을 직직 그어가며 자세히 읽은 부분이라

 예를 길게 들었다.

 

저자의 주장이 반드시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인식의 변화상은 괜찮게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하기 방식은 분명히 아주 잘못되었다.

의도적인 생략, 특정 텍스트의 특권화, 왜곡, 근거없는 주장의 반복의 연속이다.

즉, 독자들이 오해하기 좋게, 그 인물에 대해 오로지 그 면만 보도록 호도하고 있다.

물론, 그 면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도 잇는 그대로 이야기하지도 않는 주제에 말이다.

 

35000원이라는 비싼 책값을 3000원어치도 못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냥 재미있고 약간 수준있어 '뵈는' 교양서를 원하는 분이라면 상관하지 않겠다.

다른 경제사상사를 다룬 책보다는 재미있고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책도 뽀대나니까 말이다.

하지만 교양서라도 제대로 된 책을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차라리

기존에 나온 경제사상사 교양서를 읽는 편이 낫다고 말할 것이다.

(난 교양으로 나온 경제사상사 책들을 결코 좋아하지만은 않지만)

당신이 재미있고 힘들여서 읽은 책의 내용이, 사실은 그런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기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개괄적이거나 보다 균형있고 중요 텍스트를 제대로 다룬

책들을 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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