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읽지는 않았다. 허나 해방이후를 다루는 2권 이후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저자가 밝히듯이 노동운동사를 처음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이자, 무엇보다도 신자유쥬의 시대의 새로운 이념을 밝히기 위한 사회과학 공부를 위한 학습소모임을 위한 것이다. 즉 1)쉬우면서 2)간결하고 3)문제의식이 뚜렷하게 던져주고 4)객관적은 판단을 근거로 올바른 관점을 주장하는 책을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이 네 조건을 충실하게 만족시킨다.
첫째, 노동운동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라는 점에서 매우 충실하고, 또 강조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가 명확하다. 예를 들어 해방 후 남한의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양적, 질적 수준에 대한 추상적인 언급보다, 구체적인 수치와 내용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단순히 사실을 던지는 것만이 아니라 운동의 한계, 딜레마를 가감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또 이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인 근거에 기인한다. 특히 섣부리 변혁론의 논리를 주장하기 보다, 말 그대로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부분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여성경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비정치성을 이유로 한 평가절하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1980년대 초반, CA그룹(제헌의회)의 도식적인 혁명관에 대한 비판 등이 그것이다.
셋째, 노동운동을 잠재적인 가능성으로서 변혁성을 가진 것으로 보는 저자는, 이러한 변혁성을 실천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학습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노동운동의 이념의 재구성(혹은 형성)의 절실한 필요를 요구한다. 노동계급의 상태를 묘사할 따름인, 즉 논리가 아니라 사실은 현실에 대한 불만제기일 뿐인 '노동귀족' 논리나 타성에 젖은 '노동문화'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의 방향과 전략의 기초가 되어야 할 사회과학적 분석과 이에 따른 새로운 이념의 형성, 그리고 이를 만들어가는 학습이 절실하다. 물론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과거의 이미 실패한 논리로 변혁적인 사회과학은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역사적 경험이라는 가장 바닥의, 최소한의 재료부터 이념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저자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 책 역시 이러한 목적에 봉사하기 위한 재료(resource)로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다. 잠깐 책 소개를 인용해서 볼 수 있는 저자의 목적은,
안재성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와 1980년대까지 노동운동의 기초는 학습이었다고 평가하면서 학습 소모임을 강조한다. 해방 직후 수십만 노동자를 결속시킨 ‘전평’이나 1987년 대파업 이후 몇 해만에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을 일으켜 세운 동력이 바로 이런 소모임에서 사회과학 학습을 한 이들이라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서, 몰이성적으로 무조건 열심히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셈이다.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원칙"이 무엇이고 "근거"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고 골몰히 생각하는 것이 드물다. 정규직에 대한 원한을 동원하여 비정규직을 조직하려는 시도, FTA는 반대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문제제기를 묵살하는 행태,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자리매김을 고려치 않은 채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현 상황의 행태를 고려할 때, 저자의 관점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즉 "활동을 위한 활동"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활동"이 무엇인지를 밝히기에 앞서, "무엇을 위한 활동"인지를 정확히 밝히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바대로 "노동자계급은 혁명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무엇(something)이 되어야 하는지를, 즉 정치적 이념을 새롭게 복원해야 한다. 이는 비단 지식인이나 역사가, 분석가의 작업만이 아니라,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학습을 통해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 구축되어야 한다. 즉 지식인이나 노동자나 단지 MB를 싫어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즉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칠 때가 아닌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단점도 없지 않다.
우선 분량이 적고, 또 그 안에서 특정 상황/사례를 강조해야 해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적은 분량 안에 무엇이 필수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가를 고려하면, 엄밀히 말해 이는 단점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더 읽어야 할 참고자료나 문헌이 제시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물론 운동사가 대부분 그렇듯듯, 참고문헌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책을 제시하는 것은 원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1987년에서 논의가 끝난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물론 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대한 견해의 상이함,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이 부분을 간략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