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hancock32님의 서재
  • 미스 함무라비
  • 문유석
  • 12,150원 (10%670)
  • 2016-12-02
  • : 6,589

현직 부장판사이자 에세이스트로서 두 권의 책을 낸 문유석님이 '미스 함무라비' 라는 소설을 냈습니다.

 '미스 함무라비' 라는 별명을 갖게 된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 배석판사로 재판을 진행해가며 겪게 되는 성장기 입니다. 

 

저자가 각 장마다 극에서 빠져 나와 판사의 일을 소개 하는 에세이도 삽입되어 있는 특이한 형식의 소설입니다.

장편소설의 형식이면서, 제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의 형식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전관예우같이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한번쯤 봤을 법한 소재들로 채운 소극이기도 합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치한에게 가차 없는 직격탄을 날리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피고에게 온정의 시선을 건네는, 직업인으로서의 일상과 공직자로서의 사명감 사이를 오가는 저자의 냉철함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균형 있게 그려집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 당차게 외치는 정의로운 신참 판사는 이야기 속 법정에 선 남성들로부터 고속도로 출구에서 새치기 좀 했다고, 행패를 부리는 ‘젊은 여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요사이 페미니스트 앞에 ‘나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합니다. 그야 말로 ‘나쁜 페미니스트’이지요. 예컨대, 신참 열혈 판사,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 같은 캐릭터는 어쩌면 이야기의 결말까지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뻔한 클리셰일지도 모릅니다. 박차오름이라는 흔한 열혈 신입사원에게 ‘나쁜 페미니스트’ 캐릭터를 덧씌워 입체감 있는 인물로 그려냅니다.

 

고난한 어린 시절을 겪은 박차오름과 피고가 되고, 원고가 되어 법정에 서는 많은 여성 인물들은 남성 중심사회가 만들어온 편견과 관행이라 여겨져 왔던 악습과 싸웁니다.

 

 

성희롱을 당하는 이십대 직원이나 교수에게 준강간을 당한 대학원생등에 대한 피고측 변호인들의 태도는 아직 이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라는 사실을 반증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재판에서는 ‘바람 피운 년이 방에 칼까지 숨겨놓고 있다가 서방을 찔러 죽이다니 이런 천벌을 받을 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라며 분개하던 노인 배심원이 속해 있던 국민 참여재판에서조차도 자기의 남편을 죽인 피고를 만장일치로 정당방위라 결정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접했을 때 저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구심을 가졌을 거라 생각 합니다.

저자의 본업이 판사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전문분야에 대한 글을 쓸 때 저널리스트가 그 분야를 취재해서 쓴 결과물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글 쓰는 훈련을 통해 쓴 결과물 중 어떤 것이 더 양질의 산출물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예컨대, 작가가 법원의 일상을 취재해가며 쓴 소설과, 판사가 글 쓰는 법을 익혀 쓴 소설 중 어떤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인데, 소재와 도구 어느 쪽에 더 치중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미스 함무라비'를 읽고 난 후에는 후자의 예 역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법정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검사나 변호사 얘기는 많이 봐 왔어도, 판사 얘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러진 화살' 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판사의 캐릭터가 부각되는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일상에서 채집한 소재들이 이 소설의 배경이었을 거라 짐작 됩니다. 앞서 얘기한 클리셰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독특한 캐릭터와 만나면서 새로운 형식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판사의 이야기이면서, 수 많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흙수저’를 쥐고 태어난 그들을 위무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 책의 어느 장의 소제목은 영화 대사를 가져다 썼습니다. (이 말은 실제로 배우 강수연님이 사석에서 자주 쓰시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돈이 없어도 지켜야 할 정의라는 자존심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박차오름 같은 판사들이 ‘도로, 항만 같은 사회 간접 자본’으로 남아 시민 곁에서 공공의 역할을 해 줄 것 입니다.

 

우리는 권리 위에서 잠만 자지는 않을 것 입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