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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뒹굴뒹굴
  • 잘못된 길
  •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 13,780원 (5%720)
  • 2020-02-26
  • : 276

책을 마치고도 정리할 마음이 안 생겼다. 

난데없이 정리할 마음이 생긴 건, 이 아침에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올린 카스피님의 글( https://blog.aladin.co.kr/caspi/15727549 )에 댓글을 달고 나서다.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세계인에게 전시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프랑스는 파리는 무엇을 했는가. 

그저 이 책 속의 태도 정도만 견지했어도 저런 소리를 안 들었을 텐데, 싶었다. 

이제 나는 페미니즘 자체를 버렸기 때문에, 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지금 '남녀 임금격차가 여전한 데도 페미니즘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책 속의 논조가 동의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때에도 여전히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즘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운동가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 여성운동을 통한 성취를 이뤄냈고, 59세가 되던 해에 페미니즘의 새로운 사조에 경계하는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2003년에 나온 책이니, 프랑스에서 20년도 더 전에 드러났던 문제라는 거다. 


여성원자력인모임같은 게 있는데, 메일로 설문조사 요청을 했다. 세계 여성원자력인모임에서 업계의 성차별을 조사한다는 설문을 포워딩한 거였는데, 설문의 첫번째는 '나는 내 자신을 여성 또는 여성에 가깝다고 느낀다'였다. 설문하는 내 자신에 대한 그 질문을 받아들고, 나는 설문 자체를 닫았다. 원자력계에 여성인력이 적다,라는 말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건데, 질문의 시작이 그 시작을 흔든다. 이게 현대 성과 관련한 다양한 운동가들의 발언이 제도에 들어와 벌인 일들이다. 여성,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서 파리의 링에서 XX염색체의 여성복서는 XY염색체의 여성?복서 주먹 한 방에 무릎을 꿇고 기권을 선언했다. 여성주의,라는 운동이 발 딛고 선 이분법의 세상이 흐려지고 있는데, 그래도 여성주의가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성운동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나는, 남자 여자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를 위한다면서 만들어지는  공용화장실이 싫다. 누구에게나 아무런 불편이 없는 시스템,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여성주의는 극단적이고 모순적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상한 말들을 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유리할 법한 말에 가져다 붙인다. 



이처럼 불운을 당한 '희생자로 자처하기'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면서 이들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정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가해자들에게 어떤 형벌과 제재를 가할 것인가만을 화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 20p


모성애의 개념으로 여성을 정의하는 것은 사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에서 성의 차이를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28p


이런 식으로 통계 수치를 부풀려 가면서 여성운동을 진행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드워킨이나 매키넌처럼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결국 여성은 정치적으로 '아동'과 같은 사회 신분으로까지 떨어지게 된다. 연약하고 무력한 어린 아이의 신분 말이다. - 72p


아동이 부모에게 보호를 요청하듯이, 아동과 같은 신분을 갖게 된 여성은 법에 호소해야 한다. - 73p


생리학적 차이를 미덕과 역할 수행의 기본 요소로 보는 이런 접근 방식은 모성애를 알지 못하는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단죄하는 것이다. - 89p


(동성 또는 이성이) 함께 하는 삶은 심리적 억압이나 긴장을 피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침묵 속에 묻어 두거나 분노를 자아낼 수도 있는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말로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언어폭력을 육체적 폭력과 동일시하면서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산이다. 누가 뭐래도 말로 인한 상처는 육체에 가해진 상처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을 피할 수 없는, 남녀 모두 똑같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언어폭력이 부당하다고 하면서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분노의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다. - 160p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권력 남용의 또 다른 예가 있다. 30년 전부터 여성들은 임신 출산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 여성이 결정적으로 임신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당연한 듯하지만, 만일 남자가 아이의 출산을 원하지 않는 경우 이는 남자의 정액을 이용하는 '권력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무관심해서, 혹은 여자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아서, 한 남자가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남성이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출산한 후 남성에게 부성애를 강요하는 것은 '정신적 침해'라고 할 수 있다. - 164p 


소비된 성[性]에 대한 비판에 이어, 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이 페미니즘의 어투는 오래된 유대 기독교의 권선징악적 어투를 닮아갔고, 그렇게도 힘들여 없애려 했던 성에 대한 상투적 개념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 175p


성 정체성을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이런 주장이 어떤 이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성 정체성은 대립적 개념과 희화화, 그리고 상투적 표현들을 통해 습득된다. 성 정체성이 남자아이들에게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습득된 성 정체성은 차후 이성과 맺게 될 관계에서 필요한 조건이 된다. 남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경계가 무너지고 합의가 태어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유사성은 도착점에 가서야 생기는 것이지 출발점에서 생기는 것은 분명 아니다. - 245p 


이슬람교도 다른 모든 종교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 (...) 학교에서는 머릿수건을 금지해야 한다. - 276p


상반되는 두 가지 페미니즘 이론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삼사십 대의 요즘 남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첫 번째 페미니즘의 특혜를 누렸다. 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페미니즘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생활의 자유, 평등이라는 이상, 역할 분담을 굳건히 지지하지만 이 세 가지를 요구할 때는 예전의 믿음과는 철저히 단절되어야 함을 깨닫지 못한다. 십여 년 전부터 생리학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 평등을 향한 행진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대신 모성 본능을 내세우면서, 남자를 육아와 가사에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이다. - 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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