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6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같은 나라였다. 물론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로 합쳐지기에 너무 멀어진 게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과연 통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통일이 되는 과정 중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겁이 나기도 한다. (어쩌면 북한 땅의 개발이 이뤄지느라 건설 붐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는 하는데, 이게 무슨 습관 같은 바람이다. 그냥 북한의 땅이 원래는 우리 땅이었기에 바라는 것이고, 지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들이 그나마 나은 대한민국의 일원이 되길 바라기에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기에 그저 희미한 바람만 품고 있을 뿐이지만 최근 탈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게 또 그리 멀지만은 않은 일 같아서 우리가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역시 탈북한 아가씨의 수기이기 때문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커다랗게 박아 넣은 표지에서 강한 의지가 돋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탈북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시선 받는 것을 두려워 한다던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점을 인지하고도, 어쩌면 일부러 자신의 모습을 표지에 넣은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책은 먼저 영문판으로 출간되고 그것을 번역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2014년에 저자가 아일랜드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 북한 대표로 참석해 북한의 실상을 알린 바가 있어 해외 출판사 측에서 책을 내자고 제안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자가 영문으로 책을 내고, 그게 한글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출간되다니 희한한 과정을 거쳤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 책이 조명을 받는 것도 같아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2월에 유엔은 처형, 성폭행, 고의적 굶주림 등을 비롯해 북한의 인권 남용을 기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들은 인권 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 기소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보고서에 협조한 약 300명 중 대부분은 익명으로 남기를 원했고, 그나마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다. 침묵과 억압의 벽에 갇힌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을 대변할, 영어를 할 줄 아는 탈북자가 필요해졌다.
첫 연설 후 다른 곳에서도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까지 받았다. 5월에는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와 <워싱턴포스트> 사설을 공동 집필하게 되었다. 작년 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인권운동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북한 인권 문제의 얼굴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북한 주민은커녕 아직 그 누구의 대변인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부터 내 삶은 마치 달리는 기차처럼 흘러갔다.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빨리 달리면 내 과거가 나를 쫓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p. 313)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그동안 TV나 신문 등지에서 접한 적이 있어 무척 끔찍하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지저분한 흙바닥에 떨어진 음식 쪼가리를 주워 먹는 아이의 영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팔다리는 깡마르고 배만 둥글게 부푼 아이들의 사진도 본 적이 있다. 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참혹한 상황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마음 아파하곤 하지만 그때뿐, 나와 관련이 없는 얘기는 곧 잊혔다. 하지만 이렇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책으로 읽으니 마음에 훨씬 더 가깝게 와 닿았다. 길바닥에서 곡식 낟알을 주워먹는 아이라면 당연히 머릿속에 온통 먹을것 생각뿐이겠지만, 가족과 함께 살았던 저자 같은 일반인들까지 항상 먹을것에 대한 생각만 한다는 게 놀라웠다. 이러니 왜 북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에 대한 충성으로 세뇌를 당한 데다 늘 굶주림을 면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는 게 아닐까?
북한은 자기네가 사회주의 낙원이라고 칭한다는데, 진정한 사회주의 낙원이면 국민들이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줘야 한다. 돈 걱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책 속에 드러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워낙 먹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돈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마저 뒷돈을 요구하고, 주민들은 부족한 배급으로는 모든 것이 모자라니 겉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를 찬양하면서도 뒤로는 이런저런 물건을 내다파는 거래를 통해 돈을 벌려 애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드러내놓고 하는 일을 들키지 않게 숨어 하려니 그건 또 얼마나 힘들는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은 현재 사회주의가 갈 수 있는 타락의 끝을 달리는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폐해까지도 내포하고 있어 두 개의 폭탄을 발 밑에서 굴리는 형편이다.
북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평행한 선로를 달리는 기차 같은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주입된 믿음이고 또 하나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나는 남한으로 탈출하여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나서야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이중 사고라는 단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알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한마디로 머릿속에 모순적인 생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로 용케 미치지 않고 살아간다. (중략) 어쩌면 나도 마음속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의 달인이 될 수 있다. 굶주린 엄마들이 버린 아기들의 시체가 골목길에 꽁꽁 얼어 있는 모습을 보지만 머릿속에 제대로 입력할 수가 없었다. 내가 주입받은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레기더미 속 시체나 강가에 떠 있는 시체를 보는 일은 흔했고 도움을 청하며 울부짖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정상이었으니까. (p. 71)
도무지 먹고 살 길이 없으니 북한의 거의 모든 주민들이 자본주의 활동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자의 부모님도 먹고 살기 위해 금지되어 있는 무역업(?)에 손을 댄다. 이런 무역을 통해 한동안은 북한 주민치고는 그나마 풍족하게 먹고 살았으나 그게 걸리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 그리고 그때 이후 저자의 짧았던 행복한 시절은 끝이 나버린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부모님의 안위를 걱정하며 항상 먹을것을 구해야 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쁜 성분 때문에 이어질 수 없어 마음앓이 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중국과의 거리가 가까운 곳에 살았던 터라 한국을 비롯해 외국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들을 접할 수 있었고, 마침내는 중국으로 탈출할 수도 있었다. 아마 국경 지역이 아니라 북한 내륙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어딘가로 탈출할 수도 없이 그냥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했을 게 분명하다.
2002~2003년의 길고 어둡고 배고픈 겨울이 지나자 내 얼굴에는 통증을 동반한 홍반이 나타났다. 햇빛을 받으면 갈라지고 피가 났다. 거의 하루 종일 어지럽고 배가 아팠다.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가 많았다. 나중에야 니아신과 미네랄 결핍으로 생기는 펠라그라임을 알게 되었다. 고기를 먹지 못하고 주식이 옥수수인 기근 식단으로 발생할 수 있고 몇 년 동안 영양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남한에 와서 북한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봄의 꽃봉오리와 초록 새싹이 새로운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북한에서 봄은 죽음의 계절이다. 비축해둔 식량이 바닥나고 이제 막 곡식을 심은 터라 농장에서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의 봄은 굶어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계절이다. 거리에서 굶어 죽은 시체를 본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여름까지만 버티지. 안됐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p. 101)
중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북한에서 갓 넘어온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인신매매하며 사고 팔며 등쳐먹는 곳이었다. 고작 열세 살이었던 저자와 저자의 엄마도 매매의 대상이자 성적 도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저자는 하얀 쌀밥과 겨울에 볼 수 없는 채소인 오이로 만든 절임 반찬을 눈앞에 두고 중국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기아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저자의 엄마는 시골에 사는 남자에게 팔리고 저자는 중국 인신매매 브로커의 여자가 된다. 비록 배부르게 먹고 살게 되긴 했으나 행복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브로커의 마음을 얻어 시골에 팔려 노예처럼 취급받던 엄마를 되사오고, 북한에 남아 있던 아빠까지 데려오게 만든다. 그러나 인신매매처럼 끔찍한 일이 잘 굴러갈 리 없었다. 아빠는 암으로 사망하고 여러 일이 있은 후 모녀는 브로커를 떠나 중국 칭다오의 한국 선교단에 접촉해 한국으로 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한겨울의 황량한 몽골 사막을 머나먼 곳의 불빛만을 의지해 건너야 했고, 강제 북송에 대한 위협을 견디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야 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한국 땅에 발을 디뎠고 이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저자의 이야기들이 마치 머나먼 곳의 옛날 옛적 일인 것처럼 느껴지다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깜짝 놀랐다.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연다고 호들갑이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바로 그 시기에 저자와 가족들은 중국에서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우리가 어제 같은 오늘처럼 살던 그 시기에 중국 땅 어딘가에서 이렇게 고통받던 사람들이 있었다니, 세상 어느 귀퉁이에는 항상 무섭고 서글픈 일들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당장 북한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이 나라에 오기 위해 고생한 사람들을 깔아뭉개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안타깝다. 우리 사회는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배타적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말투가 다르다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트집을 잡고 괴롭힌다. 경쟁만 부추기는 사회며 학교에서 인성을 제대로 가꾸지 못한 탓이다. 점점 더 인간성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두렵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호하는 백인들에 대한 태도가 개방적인 것도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호감을 사는, 한국에 귀화해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백인들조차도 한국인으로 취급받지는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한국인 다 됐네'의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말로만 글로벌 시대니 글로벌 사회니 하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가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저자 박연미는 세계의 무대에서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다. 그럴 만하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 그 어떤 한국사람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백지처럼 새로운 세계의 온갖 지식을 받아들이고 성장해나갔다. 북한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겪었던 고된 일들이 그녀가 더욱 멀리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탈출한 것은 그녀가 말하듯 감사할 일이었다. 그녀가 알리는 북한의 실상은 북한 정부의 거짓말에 의해 반박당하고 있으며, 그녀는 북한 정부의 무서운 시선을 받고 있다. 세계의 시선을 받는 쪽도, 북한의 시선을 끄는 쪽도 모두 겁이 날 법 한데 저자는 당당하다. 그녀가 북한에서 태어나 탈출한 것, 북한의 모습을 세계에 알려주는 것이 고맙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녀가 만들어낸 작은 틈으로 북한이라는 어두운 세계에도 빛이 새어들어갈는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