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일본의 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고 어안이 벙벙한 적이 있다. 지독한 독서가로 유명한 그의 행적이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500여 권의 참고서적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약과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개인 장서를 정리하려고 지하 1층, 지상 3층의 자그마한 서고 빌딩까지 지었으니 말이다. 이 빌딩으로도 모자라 그 부근에 새 저장소를 마련했단다. 좋게 말하면 책에 쏟는 엄청난 열정이 존경스럽고, 나쁘게 말하자면 거의 광적인 수준이다.
한국에도 다치바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적지 않으리라. 조선시대의 학자 이덕무 선생은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불렀다. ‘책만 읽는 바보’란 뜻이다. 그만큼 그는 독서를 즐겼고 많은 책을 모았다.
이들에게 책은 ‘사랑’의 대상이다. 애인 다루듯 소중하게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나 책 읽는 행위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흔히들 ‘애서가’(愛書家)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애서가에게는 얼마만큼의 책이 필요할까? 금속활자 이전에는 3천 권 정도 소유하면 책 부자였다.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는 2천 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면 모범장서가로 선정한다. 나에겐 두 경우 모두 해당 사항이 없지만 나만의 보물 같은 서가를 바라볼 때면 마음만큼은 ‘부자’가 된다.
이덕무 선생은 ‘간서치’라면 나는 ‘책성애자’(冊聖愛子)다. 성애자(性愛子). 원래 정신의학 용어로 풀이하면 어떤 특정 대상에게 사랑을 느끼는 성적 지향 혹은 취향을 의미한다. 요즘 기존의 의미에서 확장되어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유행어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수 존 박은 평양냉면을 무척 좋아해서 ‘냉면 성애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성애자’의 ‘성애자’는 단순히 책에 어떤 기이한 성적 취향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책성애자’(冊性愛子)라는 단어에 야한 사진이 가득한 성인 잡지나 야설을 보면서 성적 희열을 느끼는 취향의 느낌이 난다. 그래서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의 의미로 ‘성 성’(性) 자 대신에 ‘성인 성’(聖) 자로 쓴다.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구입하면 책 속 내용보다 초판 혹은 절판본인지 먼저 본다.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한 책이라면 더 좋다. 절판본 중에 의외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내용으로 구성된 것도 있다. 나처럼 책 좋아하는 애서가 중에서도 절판본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책이라도 거들떠보지 않는 취향을 고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절판본 중에 희소가치가 높은 책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절판본은 책의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나오기 힘든 절판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많지 않은 1%의 귀한 보물을 혼자 가진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부심은 애서가가 느끼는 착각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또 다른 애서가도 나와 같은 절판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함정에 잘도 빠지면서 절판본을 소중히 여기는 애서가를 보면 범인(凡人)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책 한 권을 사는 것을 책에 대한 열정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이지 않은 책에 대한 집착으로 비춰진다.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애서가는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도 많지만, 책을 팔 땐 무척이나 신중하게 생각한다. 나는 직접 구입한 책을 팔게 되면 쓸데없이 고민을 하는 성격이다. 책을 팔고 나면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평소에 손길을 주지 않은 책인데도 말이다. 이런 허전함을 잊기 위해서 책을 팔아 생긴 돈으로 또 다른 책 몇 권을 구입한다. 책상 위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처럼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Scene #2 제대로 책을 읽을 줄 알고, 보관할 줄 아는 장서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가의 괴로움』을 읽으려는 독자들 중에 자신이 장서가, 애서가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마음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책을 많이 사는 당신의 습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되는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책성애자’(冊性愛子)인 나에겐 이 책의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상대방의 지적인 속살을 몰래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장서 3만 권을 가진 저자의 괴로움이 무척 즐거워보였고 이상하게도 지적인 쾌감이 느껴졌다. 저자가 섭렵해 온 책의 목록을 구경하고, 아끼는 책을 손에 쥐게 된 경로를 추적하는 애서가 이야기에 흥미로운 지적 풍경이 연상되었다.
그런데 그의 괴로움은 읽을 책이 많은 장서가의 행복한 엄살이 아니다. 어느새 점점 쌓여가는 책 때문에 집 안은 발 디딜 틈 없다. 함께 사는 가족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토록 책을 좋아하던 애서가가 자신의 보물들 때문에 집이 무너질 걱정을 한다. 일본은 목조 건물이 많다. 오래 지은 목조 건물일수록 지진에 의한 진동에 쉽게 무너진다. 목조 건물은 많은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 만 권 이상 되는 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책이 가득 쌓여 있는 방 어디선가 ‘삐걱’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애초부터 저자는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저자는 책을 사 모으면서 지내왔다. 하지만 이 정도 장서의 괴로움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책을 소실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결국 오카자키 다케시는 장서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3만 권 이상의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과감히 비우는 건전하고 현명한 장서 관리를 시도한다. 일단 그는 먼저 헌책방에 책을 판다. 오카자키가 생각하는 적당한 장서량은 500권이다. 500권 이상 책을 소유하고 있다면 초과된 책을 버리고, 더 이상 책을 구입해선 안 된다.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면, 그 책이 또 다른 독자의 손으로 넘어가 새 생명을 얻게 되면 책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장서가의 의미심장한 충고.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손에서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시대가 변해서 오래되고 낡은 정보가 있는 책이라면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현재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다시 읽을 일이 없다면 팔아야 한다. 책은 구입하자마자 바로 읽으면 좋지만, 대부분 애서가들은 구입한 책을 읽지 않고 바로 책장에 꽂는 악습관이 있다. 이렇게 읽을 기회를 미루다보면 책장이 아닌 박스에 보관하기에 이른다. 이러면 책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바로 읽지 못하더라도 항상 눈에 띌 수 있도록 책등이 보여야 한다. 정말로 읽을 이유가 없다면 불필요한 책을 과감하게 처분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헌책방에 팔게 되는 책을 분류하는 과정에 정말 팔아선 안 되는 책 몇 권이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그 책들은 여러 번 읽었을 것이고, 다음에도 또 읽을 수 있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책일 것이다. 건전한 장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독서법도 지녀야 한다. 오카자키는 진정한 독서가라면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책을 많이 사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책을 읽을 줄 알고, 보관할 줄 아는 장서가가 되어야 한다.
Scene #3 나를 아프게 만든 『장서의 괴로움』
이 책에는 오카자키 개인뿐만 아니라 일본 장서가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일본은 애서가가 살기에는 적합한 나라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책을 사랑하는 애서가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동안 일본의 장서가라면 가장 먼저 다치바나 다카시가 먼저 떠올렸는데 나는 그동안 일본의 책 사랑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최상의 책을 판매하고 매입하는 일본 헌책방들의 유통 과정은 애서가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장서가라면 오카자키와 같은 장서의 괴로움이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은 세 가지 아픔을 가져다줬다. 첫째, 고생해서 모아놓은 책들이 자연 재해로 인해 한 번에 소실되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일본 장서가들의 사연은 같은 장서가로서 무척 가슴이 아팠다. 둘째, 과연 나는 살면서 500권 정도의 책을 모을 정도로 소유욕을 줄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책을 과감하게 팔 수 있을까? 책을 처분해야 하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셋째, 헌책방을 애용하는 일본 장서가들의 모습에 배가 아팠다.
오카자키 다케시는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모으려고 부단히 노력중인 세상의 모든 애서가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진정한 애서가라면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당신이 마음을 비우고 장고 끝에 눈물을 머금고 ‘애장’ 이라는 미명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책의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가까스로 벗어난다면 자연히 책의 대여 또는 전자책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궁극의 질문.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의 우주』 마지막 장을 나오는 이 질문은 아직 갈 길이 먼 어설픈 애서가로서는 요원한 질문이다. 책을 처분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기증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 기증 문제를 두고 에코는 우리 애서가들의 정곡을 찌른다.
“내 컬렉션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물론 그것이 흩어지는 걸 원치 않아요. 우리 가족이 그걸 어떤 공공 도서관에 기증하든지, 혹은 어떤 경매를 통해 팔 수 있겠죠. 이 경우, 예를 들면 어떤 대학교 같은 곳으로 가서 컬렉션 전체가 통째로 가야 합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에요.”
컬렉션이 담보된 기증이 꼬리를 문다면, ‘바벨의 도서관’은 영영 문을 열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바벨의 도서관’을 만드는 것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책 사는 습관을 고치고, 오카자키처럼 건전한 독서법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놈의 책 욕심을 버리기가 어렵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던데『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나서도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