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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의심할 수 있는 자유는 과학에서 중요한 문제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이 자유는 오랜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것이다. 의심할 수 있도록, 확신하지 않도록 허락받은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중략)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유의 가치를 알리고, 의심이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인류의 새로운 잠재 능력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을 느낀다.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개선의 여지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바로 이 자유를 요구하고 싶다.

 


(리처드 파인만, 《과학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44~45쪽)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불완전한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텍스트는 불완전하다. 항상 어딘가 빠진 부분이 있다. 빈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203쪽) 



김 교수가 말한 ‘불완전한 텍스트’는 해석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경전을 뜻한다. 예를 들면 성경, 유대인 경전 <탈무드>, 유교 경전이다.
















* 김상욱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변화의 시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동아시아, 2026년)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과학 도서, 과학을 주제로 한 칼럼도 불완전한 텍스트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견해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검증한다. 과학자들도 가끔 틀리기도 하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텍스트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과학이 부실한 학문을 뜻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표현을 빌리자면, 과학은 ‘의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스스로 교정하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모든 것에 의심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이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학적 태도’를 널리 알린다고 했다. 이 과학적 태도가 바로 회의주의(skeptic)다.
















* 마이클 셔머, 류운 옮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2007년)


* [절판]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한국 스켑틱 1호》 (바다출판사, 2015년)


*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마이클 셔머, 제임스 랜디 외 여러 명의 필자 참여), 김보은 · 류운 · 하인해 외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바다출판사, 2025년)




회의주의자는 모든 견해를 불신하거나 특정 신념에만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다.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국내에서 발행된 지 11년이 된 잡지 <Skeptic>(스켑틱 코리아) 편집장이다. 그가 쓴 「회의주의 선언」(A Skeptical Manifesto)은 회의주의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글이다.[주1] 셔머는 이 글에서 ‘올바른 회의주의자’를 특정 지식에 관한 주장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회의주의는 교조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한다. 
















* 리처드 파인만, 정재승 · 정무광 함께 옮김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승산, 2008년)




올바른 회의주의자는 정직하다. 자신의 오류와 무지한 점을 인정한다. 파인만은 ‘정직해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과학적 사고라고 말했다. 파인만이 말한 ‘정직함’은 단순히 정확한 사실만 전달하는 태도를 뜻하지 않는다. 확실한 정직함은 다른 사람들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 이음 편집부 《과학 잡지 에피 Epi 36호: 펙트체커》 (이음, 2026년)




회의주의자는 ‘팩트체커(fact-checker)’다. 팩트체커는 AI가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정보’를 의심해야 한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는 과학자가 팩트체크에 동참하려면 ‘비판적 읽기(critical reading)’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주2] 학술논문의 결론을 의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과정 전체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다. 과학의 팩트체크는 오류를 확인하고, 이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과학 도서를 읽을 때도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김 교수의 글에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지구상의 많은 동물이 양성생식으로 번식한다. 암수가 만나 둘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자식을 만든다는 뜻이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혼과 사랑의 불안한 동맹」, 103쪽)



생물의 생식 방식은 크게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 있다. 무성생식은 암수 교배를 하지 않고, 자가 분열을 해서 새로운 개체를 생산한다. 그래서 무성생식을 한 생물종의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유전자는 동일하다. 















* 데이비드 베이커, 김숲 옮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20억 년간 작동해온 생존과 욕망의 진화》 (RHK, 2026년)




암수 교배, 즉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생물종은 암수 유전자 절반씩 물려받는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유전자가 섞이면 생물종이 다양해지며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다. 섹스(sex, 성행위)는 단순히 성적 쾌락을 느끼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음란하고 불결한 행위인 것도 아니다. 섹스를 즐기는 우리는 섹스의 진화적 이점을 잘 모른다. 섹스는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김 교수가 표현한 ‘양성생식’은 유성생식과 동일한 의미다. 유성생식과 양성생식이 익숙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생물학적 성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정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생물의 번식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생물학자들은 성적 이분법(gender binary)을 반박한다.
















* 강병철, 백조원, 이주원, 오승재, 효록 함께 썼음 《성소수자_LGBT(Q)》 (알마, 2018년)




이성애주의(heterosexism)는 남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것을 ‘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성애주의는 성적 이분법을 강화한다. 성적 이분법의 기준에 벗어난 동성애와 젠더퀴어(genderqueer)는 ‘비정상’이 된다.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은 이성애주의를 옹호하는 생물학을 비판한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다.[주2] 파우스토스털링은 성적 이분법의 한계를 넘어선 ‘다섯 개의 성’을 제안했다. 다섯 개의 성 중에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성은 ‘간성(intersex)’이다. 간성은 여성과 남성의 몸을 모두 가진, 성별 구분이 모호한 사람이다. 과거에 간성을 ‘남녀한몸증’ 또는 ‘자웅동체’라고 불렀지만, 차별적인 의미가 반영되어 있어서 쓰지 않는다(《성소수자_LGBT(Q)》 용어집 참조).















   


* 앤 파우스토-스털링, 홍승효 옮김 《섹싱 더 바디: 젠더 정치와 섹슈얼리티의 구성》 (후마니타스, 2026년)

 

*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노승영 옮김 《자연은 퀴어하다: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 (에이도스, 2026년)

 

* 모로하시 겐이치로, 김종현 옮김 《자연은 성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바다출판사, 2026년)




자연은 매일 ‘퀴어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퀴어 퍼레이드는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원시 물고기는 턱이 없는 무악류인데, 이들은 정자와 난자를 모두 지닌 간성이었다. 대부분의 원시 척추동물 종은 양성애적 짝짓기를 했다.[주3]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물고기인 흰동가리는 무리 내 암컷이 죽으면 수컷은 암컷이 되어 알을 낳는다. 점박이하이에나는 암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홍학과 까마귀는 같은 성별의 새에게 구애하고, 함께 살아간다.


모든 생물이 자손을 최대한 많이 낳기 위해 유성생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동물 개체군에 비(非)번식성 이성애를 하는 개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생물학자들이 관찰하면서 증명된 번식 주기를 따르지 않으며 새끼를 낳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생물학자와 동물학자는 동물의 번식 욕구를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여기며, 동성애와 비번식 개체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퀴어한 생물’을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암묵적으로 은폐한다.


그래서 파우스토-스털링과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Patricia Ononiwu Kaishian)과 같은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와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생물학자들은 퀴어의 삶과 존재 방식을 잘 이해하기 위한 ‘퀴어 생물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브루스 배게밀, 이성민 옮김 《생물학적 풍요: 성적 다양성과 섹슈얼리티의 과학》 (히포크라테스, 2023년)

 

* 조안 러프가든, 노태복 옮김 《변이의 축제: 다양성이 이끌어온 우리의 무지갯빛 진화에 관하여》 (갈라파고스, 2021년)

 

* 티에리 오케, 변진경 옮김 《셀 수 없는 성: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오월의봄, 2021년)


* [절판] 이음 편집부 《과학 잡지 에피 Epi 9호: 두 개로 나뉘지 않고 무한히 펼쳐지는, ‘젠더 스펙트럼’》 (이음, 2019년)




퀴어 생물학의 고전을 꼽으라면 나는 이 세 권을 소개할 것이다. 파우스토-스털링의 《섹싱 더 바디》(Sexing the Body, 2000년), 브루스 배게밀(Bruce Bagemihl)의 《생물학적 풍요》(Biological Exuberance, 1999년), 조앤 러프가든(Joan Roughgarden)의 《변이의 축제》(Evolution’s Rainbow, 2004년)다.


《생물학적 풍요》는 1,000쪽이 넘는 ‘벽돌 책’이지만, 지금까지 관찰된 퀴어한 도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았다. 그리고 동물 동성애 연구의 역사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동물학 연구 과정에 개입된 ‘동성애 혐오’를 지적한다. 조앤 러프가든은 트랜스젠더 생물학자다. 《변이의 축제》는 2010년에 원서 제목을 그대로 이어받아 《진화의 무지개》(노태복 옮김, 뿌리와이파리)로 출간된 적이 있다. 러프가든은 퀴어한 동물들을 설명할 때 배게밀의 책을 참고했다. 성적 이분법을 과학적으로 비판한 세 권의 퀴어 생물학 고전은 완독하기가 부담스러운 분량이다. 발췌 독서를 한다면 이 세 권의 책이 한 번 이상 인용되었거나 참고한 책들(《자연은 퀴어하다》, 《셀 수 없는 성》, 《과학 잡지 에피 9호》)을 읽으면 된다.


김상욱 교수는 ‘변하지 않는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제대로 알면 불확실한 변화의 방향이 대충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10년 후에도 배울 수 있다. 김 교수는 역사, 철학,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은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서 맨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회의주의를 ‘변하지 않는 것’의 목록에 추가하고 싶다. 편견과 교조주의, 그리고 나쁜 일에 쓰이는 AI에 속지 않으려면 회의주의의 기본 원칙을 배워야 한다. 회의주의의 기본 원칙은 금방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내 생각과 완전 정반대인 견해가 낯설고 불편해도 친절한 호기심을 발동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이 회의주의자를 속여도

그들은 계속 질문하고 항상 배운다.







 회의주의적 독자 cyrus의 주석

 







[주1] 「회의주의 선언」은 셔머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1부 1장 전체 내용이다. 2015년 한국판 <스켑틱> 창간호 특집 연재 ‘회의주의란 무엇인가’의 첫 번째 글로 게재되었다. <스켑틱>에 수록된 17편의 글을 선별한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서문으로 수록되었다. 셔머의 글이 있는 세 권의 책 모두 바다출판사가 펴냈다. 



[주2] 권석준, 「AI 과학자 시대, 팩트체크의 재정의」, 《과학 잡지 에피 Epi 36호: 펙트체커》, 이음, 2026년, 36쪽.


















* 폴라 보글, 이지훈 옮김 《운전 배우기》 (지만지드라마, 2019년)

 

* 질 돌런, 최석훈 옮김 《연극 그리고 섹슈얼리티》 (교유서가, 2025년)



[주3] 파우스토-스털링은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연인은 극작가 폴라 보글(Paula Vogel)이다. 보글의 희곡 《운전 배우기》는 작품성이 뛰어난 퀴어 연극으로 평가받았고, 1998년 퓰리처상 희곡 부문 수상작이다. 





[주4] 데이비드 베이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섹스의 역사》, RHK, 2026년, 52~57쪽.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68쪽




   

 1863년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드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특정 매춘부[주5]의 누드화를 그렸을 때, 그는 예술로서의 누드화 규칙을 깬 것이었다.



[주5] 마네(Édouard Manet)의 대표작 <올랭피아>(Olympia)는 매춘부의 누드를 그린 그림이 아니다. 


























<참고 문헌> 


* 스테파노 추피, 최병진 옮김 《마네: 전통에 반기를 든 근대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년)

 

* 자비에르 질 네레, 엄미정 옮김 《에두아르 마네》 (마로니에북스, 2006년)

 

* [개정판] 이주헌 《그리다, 너를: 화가가 사랑한 모델》 (아트북스, 2015년)

 

* [구판, 절판] 이주헌 《화가와 모델: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 (예담, 2003년)



마네는 매춘부를 연상시키는 여성의 누드를 그렸고, 당시 보수적인 비평가와 관람객들은 <올랭피아>를 매춘부를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했다. 그림의 모델은 마네를 비롯한 여러 화가의 작업을 위해 모델이 된 빅토린 뫼랑(Victorine-Louise Meurent)이다. 뫼랑은 모델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화가였다. 1876년에 뫼랑의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었고(마네는 이 해에 열린 살롱에 낙선되었다), 그 후로도 뫼랑은 여러 번의 전시회에 작품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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