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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어떻게 하면 시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시시한 질문이 아니다. 시 몇 줄 읽으면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다고 느낀 독자들에게는 시의적절한 질문이다. 과연 시인은 독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년 5월의 세계 문학, 추천 독자: 히시마]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16년)

 

* [리커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21년)


* [절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해경 옮김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문학동네, 1997년)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무작정 그것을 꽉 붙들고 있을 뿐.

 

- 쉼보르스카,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부분-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거듭 생각하는 일을 포기한다. 그래서 어렵다고 느낀 시를 만나면 눈길을 돌린다. 시구절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시 읽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시를 읽어야 한다.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올해는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쉼보르스카의 시 선집 《끝과 시작》과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에 시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이 실려 있다. 그녀는 연설에서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독자는 호기심이 많다. “나는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더 알고 싶어져.”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독자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를 해석한다. 시인이 시를 쓴 의도와 완전히 달라도 된다. 독자의 독자적(獨自的) 해석은 시인도 몰랐던 시의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나게 한다.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년 5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 천성은]

* 월트 휘트먼, 허현숙 옮김 《풀잎》 (열린책들, 2021년)

 

* 월트 휘트먼, 김성훈 옮김 《사람들은 사람들의 몸을 감싸안는다》 (파시클, 2025년)

 

* 월트 휘트먼, 황유원 옮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읻다, 2019년)



시인도 모르는 것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사람이다. 쉼보르스카는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한 편의 시든, 한 권의 시집이든 다 쓰고 나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질문을 계속하는 시인은 생각날 때마다 시구절을 매만진다. 한 번 더, 그리고 여러 번 쓰고, 또 쓴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평생 질문하고, 성찰하면서 시를 쓴 시인이다. 그는 학교를 5년 다니다가 그만두고, 독서와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 그래도 휘트먼은 모르는 게 많았고, 호기심이 왕성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관찰했고, 자유와 ‘살아 있음’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휘트먼은 1855년에 첫 시집 《풀잎》을 자비로 출판했다. 초판본에 서문과 열두 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비평가의 반응은 좋지 않았으나 휘트먼은 18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풀잎》을 7번 고쳐 쓰고 새로운 시를 추가했다. 시집의 최종 판본은 휘트먼이 사망하기 직전에 출간돼서 ‘임종판(deathbed edi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휘트먼의 시집은 시작(詩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始作)이다. 휘트먼은 《풀잎》 초판 서문에 ‘위대한 시인’의 특성을 언급한다. 위대한 시인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쓴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그가 결국 어떤 합당한 권위 아래 앉아 설명에 만족하며 편안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흡족해하며 충만할 수 있다고 그 누가 상상한 적 있는가? 위대한 시인은 그런 끄트머리에 이르지 않는다. 그는 중단도, 보호받는 비만과 편안함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의 손길은 행동으로 말한다.


(《풀잎》 「서문」 중에서)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풀잎》은 1855년 초판본을 참고한 번역본이다. 최종판 《풀잎》 완역본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풀잎》에 실린 시들을 선별해서 엮은 시 선집들은 휘트먼의 풍요로운 시 세계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쉼보르스카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에서 그해 1월에 세상을 떠난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를 언급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시인 중에 스스로 ‘시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정도로 긍지를 가진 사람은 오직 브로드스키뿐이었다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브로드스키는 5월 24일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태어났다.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러시아어로 읽으면 ‘이오시프 브로츠키’다. 그가 태어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인 5월 31일은 휘트먼의 생일이다. 브로드스키도 휘트먼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여러 번 직업을 바꾸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소련 밖에 있는 세계 문학에 호기심을 느낀 브로드스키는 독학으로 영어와 폴란드어를 공부했했다. 그는 소련 당국의 검열을 피해 영국의 시를 번역한 지하 출판물(사미즈다트, самиздат)을 만들었다. 1964년, 24세의 브로드스키는 체포되고, ‘사회의 해로운 기생충’이라는 죄명으로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수용소 생활을 길지 않았다. 동료 문화계 인사들의 탄원으로 브로드스키는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조국은 그가 자유롭게 문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1972년 소련 당국은 브로드스키를 ‘청소년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주고, 사회주의 이념에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라고 비난하면서 추방했다. 브로드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가 창작 활동을 재개했다.









1986년 미국에서 발표한 《하나보다 작은 생》(Less Than One: Selected Essays)은 브로드스키의 폭넓은 문학 편력을 알 수 있는 산문집이다. 미국과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브로드스키의 견해가 담긴 책이다. 이 책으로 그 해에 브로드스키는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비평가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for Criticism)을 받았고, 이듬해에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 조지프 브로드스키, 이경아 옮김 《베네치아의 겨울빛》 (뮤진트리, 2020년)



브로드스키는 《하나보다 작은 생》에 실린 「그림자 예찬」이라는 글에서 ‘오래 살아남은 시인들’은 하나를 선택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다(189쪽). 하지만 국내 독자들은 ‘오래 살아남은 시인들’, 쉼보르스카, 휘트먼, 브로드스키의 시 작품 전체를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쉼보르스카와 휘트먼은 시 선집이 되었고, 브로드스키는 완전히 잊힌 상태다. 1987년 브로드스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직후에 시 선집과  《하나보다 작은 생》(설영환 옮김, 세종출판공사), 단막 희곡 《대리석》(이길주 옮김, 한마당)이 출간되었으나 모두 절판되었다. 브로드스키가 매년 겨울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머무르면서 쓴 산문 《베네치아의 겨울빛》이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브로드스키는 「시와 산문」(《하나보다 작은 생》 수록)에서 휘트먼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 읽는 독자들을 치켜세웠다.

 

 


“위대한 시는 위대한 독자가 있을 때 가능하다.”



‘위대한 독자’는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풍부한 독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독자’는 시가 뭔지 몰라도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시가 난해하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폄하하지 않고, 난해한 시를 쓴 시인이 형편없다고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위대한 독자’의 호기심은 마르지 않는다.

















*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4-2018 황현산의 트위터》 (난다, 2019년)



문학 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2014년 트위터에서 ‘시 쓰기는 소통하기 어려운 것을 소통하려는 노력’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17쪽). 시 읽기도 마찬가지다. 시 속에 소통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어도 우리 독자는 조금이라도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를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정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위대한 독자’는 정답을 잘 찾는 현자(賢者)가 아니다.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색하고 틀릴 수 있더라도 ‘읽는 모험’을 즐기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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