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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6년 5월 2일 일요일 오후 3시 관람




[기획/제작]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Trunktheatre project)



[창안/연출]

조예은



[출연]

권주영, 양대은, 윤세인, 최문혁



[악사/음악]

백하형기



[무대 디자인]

정승환



[무대 감독]

서지훈



[구성 도움(초연)]

허선혜[주1], 신지원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주2] 오래 살아남으려면 물과 금이 있어야 한다. 서부 개척민들은 물과 금이 있는 곳이라면 어떻게든 달려간다. 그곳에 정착하면 험난한 유랑 생활을 청산하고, 풍족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뉴 밀리언 골드 타운’은 물과 금이 흘러넘치던 서부의 도시다. 사막 모래보다 황금이 더 많은 도시를 지나가는 강의 이름은 ‘골드 리버’다.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된 강물은 철새들의 쉼터이자 물고기들의 보금자리다. 









뉴 밀리언 골드 타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에슐리 퀸즈(Ashley Queens, 윤세인 역)다. 그녀는 열심히 일을 해서 부를 축적한 자산가다. 돈이 가득한 머리에 ‘황금 모자’까지 쓰고도 에슐리의 물욕은 마르지 않는다. 그녀는 농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간척 사업에 착수한다. 강물을 빼내고 땅이 만들어질수록 골드 리버의 물줄기는 약해지고, 결국에 완전히 메말라 버린 ‘죽음의 강’이 된다.









강물이 사라지면 주민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으러 떠난다. 도시는 빈 건물들만 남은 사막으로 변한다. 술집 ‘살롱(Saloon)’의 주인장 잭 솔로(Jack Solo)는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허무함의 늪에 빠진 그는 매일 빈 가게에서 위스키를 삼킨다. 그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금빛이 가득했던 눈부신 과거에 취해 있다.









에슐리의 동생 에드먼드 퀸즈(Edmond Queens, 양대은 역)는 누나와 다르게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에드먼드는 우연히 어머니의 유언장을 발견한다. 유언장에 막대한 유산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적혀 있는데, 상속자는 에슐리가 아니라 에드먼드였던 것이다! 그 순간, 에드먼드는 180도 달라진다. 평온했던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 분노와 물욕이 동시에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에드먼드는 에슐리를 죽여서 재산을 차지하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전설의 총잡이’ J.B.(최문혁 역)가 골드 타운에 당도한다. 쪼꼬(JJOGGO)는 J.B.의 반려 말(馬)이자 동지다. 에드먼드는 J.B.에게 에슐리를 죽이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에드먼드의 살인 의뢰에 한탕주의자 J.B.의 귀가 솔깃하다.


















* 기군상, 정유선 옮김 《조씨 고아》 (지만지드라마, 2019년)

 

* 이잠부, 문성재 옮김 《회란기》 (지만지드라마, 2019년)

 




<김치찌개 웨스턴: 밥주걱과 45구경 권총의 결투>(약칭 ‘김치찌개 웨스턴’)는 미국 서부극을 지칭하는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과 한국 고전이 섞인 잡극(雜劇)이다. 잡극은 중국 원나라 시절에 유행한 전통 희곡을 뜻한다. 잡극은 기본적으로 노래와 춤, 음악, 연기를 합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잡극은 ‘듣는 연극’이다. 가장 유명한 잡극은 기군상(紀君祥)의 《조씨 고아》, 이잠부(李潛夫)의 《회란기》 등이다.









<김치찌개 웨스턴>의 배경 음악과 배우들이 부른 노래는 대학로를 누비는 ‘전설의 악사’ 백하형기가 만들었다. 


<김치찌개 웨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레퍼토리 곡은 술집에 혼자 있는 잭 솔로가 부르는 노래다. 가제(歌題)가 있는지 모르지만, ‘골드 리버’를 처절하게 부르는 권주영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라서 필자는 이 노래에 ‘골드 리버’라는 가제(假題)를 붙여주고 싶다.

















* 정충권 옮김 《흥보전. 흥보가. 옹고집전》 (문학동네, 2010년)




재산을 둘러싼 혈육 간의 갈등은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동서양 민간 설화와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와 놀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착한 아우와 못된 형’이다. <흥부전>의 놀부는 흥부의 집에 찾아가 쌀을 얻어보려고 하지만, 흥부의 아내는 밥주걱으로 놀부의 뺨을 때리면서 쫓아낸다. 에슐리는 ‘못된 장녀’로서 놀부와 비슷하다. 하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의 퀸즈 남매는 선악의 대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흥부전>의 형제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흥부와 놀부는 순수한 악인과 순수한 선인이다. 반면에 퀸즈 남매는 선악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인물이다. 에슐리는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에슐리는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배제되고, 가부장이 될 수 없는 ‘여성’이다. 장녀인데도 재산 상속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상속 경쟁에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없다는 현실을 일찍이 깨닫는다. 비록 비윤리적인 방식이지만, 에드먼드를 속이고 상속권을 가로채는 전략을 선택한다. 에슐리는 ‘과거에 착했으나 악인으로 변한’ 인물이다.

 

에드먼드 역시 선인에서 악인으로 달라진 인물이다. 그는 누나의 탐욕 때문에 도시가 몰락한 사실을 알고 있다. 에드먼드의 복수는 누나를 응징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원래 자신이 쓰고 있어야 했던 누나의 황금 모자를 차지하기 위해 복수를 꿈꾼다. 에드먼드는 누나의 심장에 45구경 권총을을 겨누고, 궁지에 몰린 에슐리는 동생이 쏘는 총알을 막는 밥주걱을 내민다. 혈통의 결투가 펼쳐진 골드 리버는 핏줄기가 흐르는 ‘붉은 강(Red River)’[주3]이 된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개정판 293번째 책]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2010년)




<김치찌개 웨스턴>은 피카레스크(picaresque) 연극이다. 피카레스크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악인으로 나오는 문학 장르다. 퀸즈 남매는 자신의 이익과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당’이다. 황금 모자를 쓴 에슐리는 너무 높이 뛰어 올랐다. 멀리 간 누나를 아래서 바라본 에드먼드는 황금 모자를 차지하기 위해 복수를 단행한다. 이익에 눈이 멀어 스스로 비극을 초래한 이 두 사람은 ‘위대한 퀸즈 남매(The Great Queens brother and sister)’다.[주4]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는 트렁크 가방에 담을 수 있는 소품(오브제)을 활용한 연극을 만드는 극단이다. <김치찌개 웨스턴>의 매력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무대와 소품들이다. 






















1막은 인형극(puppet play) 형식으로 전개된다. 넓지 않은 책상은 서부 시대의 마을을 묘사한 무대가 된다. 배우들은 손가락 인형 연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객 좌석에 종이로 만든 ‘오페라 안경’이 하나씩 비치되어 있다. 오페라 안경은 배우들의 손가락 인형 연기를 자세히 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 피터 브룩, 이민아 옮김 《빈 공간》 (걷는책, 2019년)




배우들이 협력해서 완성되는 연기 방식을 ‘앙상블 연기(ensemble acting)’라고 한다.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Peter Brook)은 앙상블 연기가 ‘공동 창작’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배우들은 무대를 설치하고, 소품을 만들고, 함께 무대 위에 올라 열연한다. 연극인이 아닌 필자가 생각하는 앙상블 연기다. 














무대 장치와 소품을 만드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연기 연습과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병행하는 배우들은 겹겹이 쌓인 노동을 묵묵히 해낸다. 극단에 소속된 연극인들이 각자 또는 모두가 느끼는 크고 작은 괴로움을 이해하고, 극단 동료가 덜 힘들 수 있게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들이 만든 연극은 놀이가 된다(A play is play). <김치찌개 웨스턴>은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재미를 느끼는 놀이가 된, ‘살아 있는 연극’이다.














<공연 작품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래도 꼭 언급하고 싶은 cyrus의 주석>







※ 연극과 관련된 사진은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trunktheatreproject/

 


















* 한현주 · 허선혜 · 나수민 《트랙터》 (제철소, 2022년)


* 김슬기 · 이오진 · 허선혜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 (제철소, 2017년)

 

 


[주1] 허선혜는 <창작살롱 나비꼬리>에 소속된 극작가 겸 연출가다. 허선혜 극작가와 조예은 연출가는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 8기 동인이다. <김치찌개 웨스턴>은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가 주최한 동인 페스티벌 공연 참가작으로, 2024년 9월 27일부터 10월 6일까지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했다. 









허선혜 극작가의 첫 번째 작품은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 사건』이다. 이 작품과 단막극 『먼지 회오리』는 청소년 희곡집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2023년 11월 대구 대명동 공연 거리에서 활동하는 극단 <백치들>이 만든 『햄스터 살인 사건』 공연을 관람했다. 허선혜 극작가의 또 다른 청소년극 『빵과 텐트』는 2022년 국립극단에 초연된 세 편의 청소년극을 모은 《트랙터》에 수록되어 있다.

















* [절판] 안혁 《나의 웨스턴 무비 여행: 그때의 서부영화 그때의 서부시대》 (좋은땅, 2013년)



[주2, 주3] <옛날 옛적 서부에서>와 <붉은 강>은 웨스턴 영화의 제목이다. 연극 감상문 제목은 웨스턴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따왔다. 연극을 보기 전에 웨스턴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만난 책이 《나의 웨스턴 무비 여행》이다.




[주4]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개츠비’라는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의 제목을 정하느라 고심했다. 그가 가장 마음에 든 제목 중 하나가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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