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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 퀜틴 스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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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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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슨 소원을 빌 건지 말해줄게. 우선 모험을 하고 싶다고 할 거야.” 헉(Huck, 허클베리 핀)이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에, 네가 나처럼 자유인이 되면 좋겠다고 할 거야.”

 “고마어여.”

 “고맙긴 뭘. 아예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면 좋겠다고 하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거 아냐?” 헉이 물었다.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뭐라고?”



(퍼시벌 에버렛, 《제임스》 중에서, 99~100쪽)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다. 그는 순진한 자유인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백인 소년은 절친한 흑인 노예 짐(Jim)도 자유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짐은 순진하지 않다. 그는 자유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제임스(James)’다. 그는 자유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임스는 주인인 대처 판사(Judge Thatcher)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서재에서 볼테르(Voltaire)와 몽테스키외(Montesquieu)를 만난다. 두 사상가는 언어와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주장했다. 제임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인이라고 강조한 유럽 지식인들의 생각을 가슴속에 깊이 품는다. 자유에 목마른 제임스는 꿈속에서 볼테르를 만난다. 볼테르는 짐을 위로한다. “나는 자네와 같네. 자네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네.” [주1]


하지만 제임스는 신중하다. 지식인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를 회의적으로 숙고한다. 생각하는 제임스는 백인들 앞에서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짐이 아니다. 백인 지식인들을 주인처럼 대하지 않는다. 유럽 지식인들의 자유론은 순진하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려면 유럽인처럼 교육을 받고,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제임스는 현실에 동떨어진 순진한 자유론을 거부한다. 자유인이 되려고 백인처럼 행동하는 흑인은 절대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백인이 흑인을 관대하게 대한다고 해도, 흑인은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제임스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이지만, 다른 백인들 앞에서 굽신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노예 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소설가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는 창작과 출판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온 작가다. 그는 스탈린(Joseph Stalin)이 좋아하는 극작가로 전성기를 누리지만, 소비에트 체제의 모순을 풍자하는 희곡을 쓴 이후로 마음대로 글을 쓰지 못한다. 스탈린과 검열관들은 불가코프의 모든 희곡이 극장에 상연하지 못하게 하고, 소설의 출판을 금지한다. 창작의 자유를 박탈당한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를 완전히 떠날 생각이 없다. 스탈린이 망명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스크바에 남을 것이다. 소극적인 불가코프는 망명을 포기한다. 스탈린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불가코프에게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조연출로 일할 수 있게 해준다. 반 소비에트 작가로 비난받은 불가코프는 숙청과 수용소 생활을 피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창작의 자유를 끝내 되찾지 못한다.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마지막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상연 금지된 희곡들은 불가코프와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해금된다.


허클베리 핀에 간섭받지 않는 제임스는 자유로운 인간인가? 스탈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감시와 검열에 시달린 불가코프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유를 누린 작가인가? 두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제임스는 백인들의 자유가 우선되는 미국 사회에, 불가코프는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하는 소비에트 체제에 예속된 상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유의 형태를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라고 한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정립한 철학자다. 밀은 《자유론》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벌린은 자유를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소극적 자유, 또 다른 하나는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다.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인은 자아실현을 중시하며 공동체적 가치와 평등을 강조한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는 소극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그들은 적극적 자유를 비판한다. 적극적 자유를 지나치게 허용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결국 전체주의 사회로 이르게 된다고 우려한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허클베리 핀이 생각한 것처럼 인간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하려는 의지가 발현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자유’다.


영국의 정치 철학자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는 소극적 자유를 자유주의의 근본으로 추켜세우는 벌린을 비판한다. 스키너는 허클베리 핀의 친구가 된 제임스와 같이 ‘착한 백인을 만난 노예’를 예시로 언급하면서 소극적 자유의 한계를 지적한다. 허클베리 핀이 제임스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를 가족처럼 대한다면 제임스는 자유인이 된 것일까? 스키너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허클베리 핀이 모든 노예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진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노예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해도 제임스의 우정이 변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허클베리 핀이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성세대에 공감하고, 그대로 답습한다면 노예제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착한 백인을 주인으로 섬기거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노예는 다른 노예들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지만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는 노예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착했던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 노예의 삶을 간섭하고, 활용 가치가 떨어진 노예를 팔 수도 있다. 스키너는 당장 간섭하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개인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힘을 가진 세력이나 집단이 있으면 완전한 자유인이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노예가 자유를 누리려면 그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고, 더 나아가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론의 강점에만 주목한 자유주의의 역사에 도전한 책이다. 스키너는 편향적인 자유주의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소극적 자유론자들이 외면하고 비판한 ‘공화주의적 자유론’을 발굴한다. 스키너가 주목한 자유주의자는 군주정을 폐지하고 의회를 도입하려고 했던 17세기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지적인 뿌리는 고대 로마법에 새긴 공화주의다. 군주의 세력을 견제하는 권리를 가진 민중은 공화주의적인 자유인이다.













군주정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사상가가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다. 그의 또 다른 저서, 《군주론》보다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로마사 논고》는 영국의 공화주의자들에 영향을 준 책이다. 스키너는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꿈꾼 공화주의적인 자유론을 가리켜 ‘신 로마적 자유론(Neo-Roman liberty)’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자유론자들은 공화정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간섭받거나 억압받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가 《리바이어던》의 저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다. 홉스는 민중이 주도한 혁명에 반대하고, 간섭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홉스의 소극적 자유론은 정치 철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공화주의적 자유론은 잊히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사적 자유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국가와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항하는 무기가 된다.


소극적 자유론자들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를 강조했으면서도 비유럽인들의 자유를 침해한 제국주의에 침묵했다. 밀은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동인도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들의 자유에 무관심했고, 유럽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개인을 위한 자유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진다. 이기심과 집단 이기주의가 뭉쳐진 자유주의는 타인과 다른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자유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되는 경쟁 상대로 인식한다.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는 자유주의는 삭막하다.


소극적 자유를 잘못 배운 자유주의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꽉 쥐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유의 다양한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토론하는 방법을 모른다. 밀은 ‘생각과 토론의 자유’가 있으면 개인의 오류를 스스로 검토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독선을 피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생각과 토론의 자유’는 다르게 생각하는 타인의 권리를 방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주입하는 독단적인 주도권을 경계한다. 우리가 진짜로 되찾아야 할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는 민주적인 대화가 익숙한 ‘생각과 토론의 자유’다.







<마키아벨리와 밀을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




[서평 제목과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사진에 관한 주석]


 “너는 이미 죽어 있다”는 일본 만화 <북두의 권> 주인공 켄시로(ケンシロウ)의 명대사다. <북두의 권> TV 만화는 1984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TV 만화 1기 여는 곡(OP)의 제목은 ‘愛をとりもどせ!!’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을 되찾아라!!’다. 서평 제목은 여는 곡 제목에서 따왔다.




[주1] 《제임스》, 71쪽.




[주2] 제임스의 꿈에서 나타난 사상가는 볼테르와 존 로크(John Locke)다. 볼테르와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노예제를 분석한 로크의 관점을 비판한다.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개정판에 역자가 쓴 논문 「로크의 자유론」이 보론으로 추가되었다. 

 역자는 이 논문에서 로크의 자유론을 소극적 자유론으로 분류하고 비판한 스키너의 견해를 반박한다. 그러면서 로크의 자유론이 자유주의자의 소극적 자유론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의 적극적 자유론도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 《제임스》 중에서, 382쪽

 

 “당신은 이 책이 없어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예요. 애초에 당신이 이 책을 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캉디드』. 볼테르가 쓴 또 다른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책[주3]이에요.”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진보라고 하시면 돼요.” 내가 말했다.



[주3] 제목은 나오지 않지만, 제임스가 대처 판사의 서재에서 읽은 책 중에 밀의 책도 포함되어 있다. 밀의 아버지는 열 살도 안 된 아들을 엄격하게 교육한 것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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