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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제가 자주 가는 칵테일 바가 있어요. 바 이름은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칵테일 바 사장님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감명 깊게 읽어서 가게 간판에 소설 제목을 새겼습니다. 이곳에 러시아에서 온 바텐더가 일하고 있습니다. 바텐더의 이름은 ‘율리아’입니다. 사장님과 동료 바텐더들은 그녀를 ‘리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리아 님이 저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어요. ‘이 작가의 책’, 정말 재미있어서 세 번이나 읽었다면서요. 리아 님이 추천한 책은 러시아 작가의 소설이었어요. 이 소설은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문학 전문가들이 ‘걸작’으로 손꼽는 작품입니다.


리아 님은 러시아 소설을 아주 좋아해서, 원작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도 봤다고 했습니다. ‘이 작가’를 좋아해서 모스크바에 있는 ‘이 작가’ 박물관까지 방문했답니다.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와 톨스토이(Tolstoy)가 지루하다면서 ‘이 작가’를 추켜세웠어요.


러시아를 가본 적이 없는 저는 내심 “러시아에서 ‘이 작가’가 정말로 대단한가?’라고 느낄 정도로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 작가’는 생전에 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굴욕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이 작가’는 스탈린(Joseph Stalin) 정권을 풍자하는 희곡을 썼습니다. 스탈린의 검열관들은 그가 쓴 문제의 희곡을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소설마저 출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에 아부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 작가’의 명예를 난도질하는 수준의 평론을 쓰면서 공격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박탈된 ‘이 작가’는 스탈린에게 직접 전화를 겁니다. 작가는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했고, 러시아에 남아야 한다면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떠날 결심을 확고히 하지 못한 작가는 망명 요청을 철회했고, 스탈린은 그에게 새 직장을 주선했습니다. 작가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조감독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작가의 작품 해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했고, ‘소련에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 소설’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직감했던 것일까요? 병마와 싸우고 있던 작가는 죽기 3주 전까지 ‘이 소설’을 쓰는 데 열중했습니다. 결국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했고, 194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은 작가가 죽은 지 26년 후에 처음으로 인쇄되었습니다. 1966년, 월간 문학 잡지 『모스크바』에 소설의 일부가 실렸습니다. 잡지에 실린 소설은 완전한 원본이 아닌 검열관의 가위질을 심하게 당한 반쪽짜리 글이었습니다. 이랬던 ‘이 작가’가 지금은 러시아인들이 즐겨 읽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은 러시아 문학 교과서에 실렸고, 연극과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년 2월의 세계 문학]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609번째 책]

* 미하일 불가코프, 정보라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타》 (민음사, 2010년)




러시아 출신 바텐더 율리아가 추천한 소설. 출판할 수 없는데도 작가가 죽을 때까지 집필에 전념했던 소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 문학 작품은 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시간상으로 간격이 큰 두 개의 장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는 1930년대 소련의 모스크바, 또 다른 하나는 예수(예슈아 하-노츠리)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게 되는 빌라도(Pontius Pilate) 총독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예르샬라임)입니다.


모스크바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작가입니다. 소설 제목의 ‘거장(master)’은 이 익명의 작가를 가리킵니다. 작중의 거장은 예수와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씁니다. 계속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예루살렘 이야기는 거장이 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예루살렘 이야기는 ‘소설 속의 작은 소설’입니다. 거장이 쓴 예루살렘 이야기는 비평가의 혹평을 받고, 실망한 거장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마르가리타(Margarita)는 거장의 연인이자 조력자입니다. 소설 제목만 보면 두 사람의 애정 관계를 묘사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가코프는 독자들의 예상을 깨고,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존재를 등장시킵니다. 악마 볼란드(Woland)와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입니다. 소설의 구조가 복잡해졌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모스크바와 예루살렘)에, ‘인간(거장과 마르가리타)-악마(볼란드 일행)-소설 속 인물(빌라도와 예수/예슈아 하-노츠리)’로 이루어진 3중의 작중 인물이 나옵니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437번째 책]

* 괴테, 전영애 옮김, 《파우스트》 (도서출판 길, 2019년)


* 괴테, 정서웅 옮김, 《파우스트》 (민음사, 1999년)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괴테(Goethe)의 장편 운문 희곡 《파우스트》를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거장은 파우스트(Faust), 마르가리타는 그레트헨(Gretchen), 볼란드는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 비슷합니다. 재미있게도 《파우스트》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두 작가가 죽을 때까지 여러 번 고쳐 쓴 필생의 역작입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12월의 세계 문학]

* 보리스 사빈코프, 정보라 옮김, 《창백한 말》 (빛소굴, 2025년)

 


* 보리스 사빈코프, 정보라 옮김, 《테러리스트의 수기》 (빛소굴, 2025년)

 


* 보리스 사빈코프, 연진희 옮김, 《검은 말》 (빛소굴, 2025년)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번역자는 소설가 정보라입니다. 정보라 작가는 지금도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히 번역하고 있습니다. 









2024년 <세속> 12월의 문학 작품이었던 보리스 사빈코프(Boris Savinkov)의 《창백한 말》은 정보라 작가가 번역했습니다. 작년에 표지가 바뀐 《창백한 말》, 이 소설의 프로토타입으로 알려진 《테러리스트의 수기》(국내 초역)가 출간되었고, 절판되었던 《검은 말》이 복간되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8월의 세계 문학]

* 안톤 체호프, 강명수 옮김 《갈매기》 (지만지드라마, 2019년)








러시아 희곡 하면 대부분 독자는 체호프(Anton Chekhov)를 먼저 떠올립니다. 2024년 <세속> 8월의 문학 작품은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였습니다.



















* 미하일 불가코프, 강수경 옮김, 《백위군 (희곡)》 (지만지드라마, 2019년)

 

* [절판] 미하일 불가코프, 유승만 옮김, 《백위군》 (열린책들, 1996년)



















* 미하일 불가코프, 정막래 옮김, 《조이카의 아파트》 (지만지드라마, 2019년)

 

* [절판] 미하일 불가코프, 김혜란 옮김, 《조야의 아파트. 질주》 (책세상, 2005년)

 

















*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현암사, 2017년)

 

*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현암사, 2014년)

 

* 이현우,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 세계 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는 즐거움》 (오월의봄, 2012년)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며 지금도 세계 문학 강의를 하는 서평가 ‘로쟈’ 이현우 님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가 체호프와 불가코프라고 했습니다. 













불가코프의 희곡 《백위군》은 동명의 장편 소설을 개작한 작품입니다. 소설 《백위군》 번역본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희곡 버전의 《백위군》은 출간되었습니다. 1926년 초연 당시 제목은 <투르빈 가의 나날>이었습니다. 《백위군》은 스탈린이 열다섯 번이나 봤을 정도로 불가코프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희곡입니다. 그러나 불가코프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조이카의 아파트》(조야의 아파트)와 《질주》(도망) 공연 이후로 불가코프는 ‘반 소비에트 작가’로 비판받기 시작했고, 앞에 언급한 대로 스탈린의 눈밖에 나고 말았습니다.



















* 이현화, 《불가불가》 (지만지드라마, 2019년)

 

* 양승국 엮음, 《한국 희곡선 2》 (민음사, 2014년)

※ <불가불가>가 수록되어 있음

 

 


‘불가불가(不可不可)’라는 독특한 제목이 붙은 국내 희곡이 있어요. ‘불가불가’는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불가불가》에 ‘극중극’이 나옵니다. 극중극에 등장하는 왕은 결단력이 부족해서 대신들의 견해에 의존합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으면 대신들은 ‘불가불가’라고 대답합니다. 왕은 대신들이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불가불가’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배우 2] 

경은 어떠시오?

 

[배우 5] 

예, 소신 말씀이오니까?

 

[배우 2] 

경의 의견을 듣고 싶소.

 

[배우 5]

… 불가불가(不可不可)하온 줄 아뢰옵니다.

 

[배우 4] 

예? 무어라…하셨소?

 

[배우 5] 

불가불가…

 

[배우 3] 

아니, 대감, 불가불, 가요, 아니면 불가, 불가요?

 

[배우 5] 

불가불가…



(이현화, 《불가불가》 중에서, 14쪽)




극 중 대사 ‘불가불가’는 쉼표를 어느 위치에 쓰고,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불가불, 가’는 ‘어쩔 수 없이 찬성할 수밖에 없다’라는 뜻입니다. ‘불가, 불가’는 강한 부정에 가까운 ‘결사반대’를 뜻합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처음 접한 <세속> 독자님들의 본심은 ‘불가불, 가’일까요, 아니면 ‘불가, 불가’일까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기 어려운 소설입니다. 저는 1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요, 적응하기가 쉽지 않군요. 읽었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요. 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읽으셨으면 합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책을 덮고, ‘완독 불가, 불가코프(불가코프의 소설 완독하기 싫다)’를 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야기가 지루하고, 어려워도 ‘완독 불가불, 가코프(어쩔 수 없지만, 불가코프의 소설을 완독해야겠다)’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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