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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 우주를 품은 미술관
  • 파스칼 드튀랑
  • 26,100원 (10%1,450)
  • 2025-08-15
  • : 1,475










4점  ★★★★  A-





우주는 무한한 도화지다. 사람들은 까만 도화지에 알록달록한 상상력을 마음껏 수놓았다.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았던 칼데아 사람(Chaldean)은 밤의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누워서 별 하나하나 눈 맞춤했다. 별빛을 듬뿍 받은 화가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밤의 화가들은 별을 그러모아서 여러 가지 동물을 그려 넣었다. 별들을 연결해서 만든 동물 그림은 별자리가 되었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별자리에 어울릴만한 신화를 만들었다.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밤하늘에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을 새겼다.


붓을 든 화가들은 한 폭의 캔버스에 우주를 담으려는 야망을 품었다. 대부분 화가는 우주를 몰랐다. 하지만 잘 모를수록 우주의 모습은 더 잘 그려진다. 화가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별과 우주를 만든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천문학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별과 행성을 그린다. 거대한 도화지였던 우주는 그림이 되었다. 코스모스(cosmos, 우주)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으면서 자라난다.


《우주를 품은 미술관: 예술가들이 바라본 하늘과 천문학 이야기》는 멀티버스(multiverse) 화보다. 과학에서 말하는 다중우주(多重宇宙)는 실험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우주들을 직접 볼 수 없다. 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예술가들이 그린 다중우주는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코스모스(우주)가 울긋불긋 만개한다. 책의 저자는 문학 교수다. 저자는 그림 작품들을 설명할 때 우주와 행성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인용한다. 시인과 소설가들도 우주에서 영감을 찾았다.








예술가들이 상상한 멀티버스는 시대별로 다르다. 중세인들의 우주는 신의 피조물이다. 태양은 예수의 신성함을, 달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성직자와 교부 철학자들은 성경 구절에 부합하는 우주를 좋아했다. 중세 예술가들은 성경을 펼쳐서 우주를 찾았다. 








실험과 관측을 중시하는 천문학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중세 우주론의 한계가 드러났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자들이 이용한 망원경은 우주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화가들이 풍경을 그릴 때 사용한 카메라의 조상)다. 









낭만주의자의 우주는 우울하고 암울하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묘사한 석양은 태양의 뜨거운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하늘이다. 희미한 석양은 힘이 없다. 인간처럼 우주 또한 쇠퇴하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거인 같은 망원경과 우주를 홀로 떠도는 인공위성 덕분에 우리는 우주와 행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에 살았던 밤의 화가들은 토끼가 살고 있는 달을 상상하면서 그렸다. 과학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선명한 달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래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를 정확하게 아는 과학은 우주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예술을 죽이지 못한다. 








예술로 피어난 코스모스는 영원하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 106쪽




 

 아폴리네르는 시집 『알코올』(1913)에서 과감하게 “목이 잘린 태양”이라 표현함으로써 태양의 언어를 혁신했다. [주1]



[주1] “목이 잘린 태양”이라는 시구가 나오는 시는 《알코올》에서 첫 번째로 실린 『변두리』다. “목이 잘린 태양”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황현산 옮김, 《알코올》, 열린책들, 2010년)






* 145쪽




 

아르튀르 랭보, <태양과 육체>, 『시집』, 1870 [주2]

 


[주2] 랭보가 처음으로 발표한 시집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1873년에 발표되었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랭보는 잡지를 통해 시를 발표했다. 1870년에 랭보의 이름이 실린 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태양과 육체>는 1870년에 쓴 시다.



[우리말로 번역된 <태양과 육체>가 실린 랭보의 시 선집]

 

* 최완길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철》 (북피아, 2006년, 절판)


* 한대균 옮김, 《나의 방랑》 (문학과지성사, 2014년)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랭보의 연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베를렌의 시 선집은 그리 많지 않으며 절판되었다. 베를렌의 시 <하얀 달> 전문을 볼 수 있는 번역본은 《베를렌 시선》(윤세홍 옮김, 지만지, 2013년)이 유일하다.






* 159~160쪽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놀라운 업적을 칭송했다. 레비나스는 가가린이 “한 시간 만에 인간이 모든 지평선을 넘어 존재했음”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고 우주에서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게 하늘”이었다고 말했다. [주3]



[주3] 출처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에세이 『Heidegger, Gagarin and Us』(“하이데거, 가가린 그리고 우리”, 1961년)다. 이 글은 <Difficult Freedom: Essays on Judaism>(1963년)에 수록되었다.



















[주4]


* 186쪽

토성의 위성 수: 82

 

* 206쪽

목성의 위성 수: 79

 

* 218쪽

천왕성의 위성 수: 27

 

* 220쪽

해왕성의 위성 수: 14



[주4] 토성, 목성, 천왕성, 해왕성의 위성 수가 정확하지 않다. 토성은 태양계 중 가장 많은 위성을 가진 행성이다.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이 인정한 토성의 위성 수는 274개다. 목성의 위성 수는 95개, 천왕성의 위성 수는 28개, 해왕성의 위성 수는 16개다.

 

(출처: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Planetary Satellite Discovery Circumstances’, https://ssd.jpl.nasa.gov/sats/discovery.html)







* 215쪽





에베레스트산 8,844m [주5]


 

 


[주5] 에베레스트산의 높이 측량은 1849년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인도, 미국이 산의 높이를 측정했는데, 측량법이 달라서 높이가 다르게 나왔다. 1954년(또는 1955년) 인도가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는 해발 8,848m였다. 처음으로 인정된 에베레스트산 높이 값이다. 


2005년 중국이 측정했을 때는 약간 줄어든 8844.43m가 나왔다. 8,844m는 바위 위에 쌓인 눈을 제외한 상태에서 측정된 높이 값이다. 


1999년에 미국은 GPS로 측정해서 확인된 산의 높이가 8,850m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측량 결과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식 높이는 해발 8,848m다. 


에베레스트산은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으면 높아진다. 2015년 히말라야에 지진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나서 중국과 네팔이 공동 측량을 착수했고, 1m 높아진 8,848.86m로 확인되었다.


(출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실측해 보니 1m가량 높아졌다>, 연합뉴스, 2020년 12월 8일 입력,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67863?sid=104)






* 259쪽




 


 혜성의 꼬리와 사람의 머리카락이 비슷하므로 혜성은 여성의 이미지와 강력하게 동일시된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는 꽃다운 소녀들의 행렬이 바다를 향하는 것을 “반짝이는 혜성처럼 둑을 따라” 나아간다고 표현했다. [주6]

 


[주6] 저자가 인용한 문장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부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년) 2권 ‘고장의 이름 : 고장’에 나온다. 프루스트 특유의 길고 늘어진 문장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방파제를 따라 빛나는 혜성처럼 앞으로 나아가던 그 무리 안쪽에서 소녀들은 주위 군중이 자기들과는 다른 인종인 듯, 또 그들의 고통 역시 자기들 마음속에 어떤 유대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판단한 듯 군중을 바라보지 않는 것 같았고, 나사가 풀린 기계처럼 보행자들을 피하는 수고도 할 필요 없다는 듯, 멈춰 선 사람들에게도 길을 비키도록 강요했으며, 기껏해야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접촉도 꺼리는 어느 겁 많은 또는 분노한 노신사가 허둥대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도망이라도 치면,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화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중에서, 255쪽,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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