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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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썅마이리딩-천의 얼글
  • 블루 베이컨
  • 야닉 에넬
  • 15,120원 (10%840)
  • 2025-02-03
  • : 760




4점  ★★★★  A-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붓질은 포악하다. 

그는 붓을 휘두르면서 모델의 얼굴을 때린다. 







붓에 맞은 눈, 코, 입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진다. 

검정, 회색, 빨간색이 불길하게 뒤섞인 피부는 거칠거칠하다. 

베이컨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한 빨간색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베이컨의 초상화와 인물화를 만나게 되면 지옥도(地獄圖)가 떠올린다. ‘고어(gore: 피)’로 가득한 그림들이 유명해지자, 대중은 베이컨을 ‘폭력의 화가’로 기억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대중의 감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본인은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는 야만과 전쟁이 판치는 이 세상이야말로 자신의 그림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판한다. 베이컨의 일침은 틀리지 않았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베이컨은 한술 더 떠서 “지옥은 바로 이 세상이야!”라고 말했다.


베이컨은 자신의 그림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그러나 어두침침한 그의 그림은 볼 때마다 무섭다. 여기서 베이컨 그림의 기괴한 매력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고민한다. 폭력과 잔혹. 살벌한 단어를 쓰지 않고, 베이컨의 그림이 덜 무섭게 보이도록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이 바로 《블루 베이컨》(Blue Bacon)이다.


이 책을 쓴 야닉 에넬(Yannick Haenel)은 청소년 때부터 베이컨을 좋아한 작가다. 그는 베이컨의 작품들이 전시된 퐁피두 센터(Pompidou Center)에,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 관람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은 축복이다. 하지만 저자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베이컨의 그림들과 함께한 하룻밤이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저자는 베이컨이 만든 지옥의 쓰라린 맛을 느낀 이후로 편두통에 시달린다. 하룻밤의 그림 감상의 후유증이다. 하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베이컨의 또 다른 그림을 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콕콕 찌르던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편두통에 짓눌린 저자의 마음을 치유해 준 베이컨의 그림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Water from a Running Tap)이다. 이 그림은 베이컨이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인 1982년에 완성되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난폭한 베이컨’이라는 수식어가 나오게 만든 검은색이 가득한 그림들과 다르게 아주 평범하다. 노란색 배경 한가운데에 푸른색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튀어나오는 파란색에 흠뻑 젖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앞에 서 있었다. 물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물의 시원함은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그 시원함 덕분에 유익한 빛이 내 머리 주위로 흘러들었다. 나는 점점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숨도 잘 쉬었다.


(47쪽)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청량함을 느낀다. 저자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파란색을 ‘상처 없는 나라’로 이끄는 빛으로 비유한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파란 천국’이다. 


《블루 베이컨》은 ‘그림 없는 미술 책’이다. 저자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오로지 단어로 이미지를 설명한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베이컨의 기괴한 그림들이 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일은 없다. 유명한 ‘블랙 베이컨’을 만나기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컨의 ‘파란색 그림’을 먼저 알고 있으면 좋다. 그러면 검은색에 가려져 있던 색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베이컨은 붓으로 자신과 인물들을 분해했다. 《블루 베이컨》은 베이컨의 삶에 칠해진 검은색을 분산시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cyrus의 주석>

 



* 21쪽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주1]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 42쪽




 

 데이빗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흠잡을 데 없이” 그려진 자신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언급한다.


[주1] 데이비드 실베스터, 주은정 옮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디자인하우스, 2015년).





* 51쪽




 

 앙토냉 아르토는 반 고흐의 까마귀가 지구를 황폐화하는 악령에 맞서기 위해 세워진 허수아비라고 확신했다. [주2]

   

[주2] 앙토냉 아르토, 이진이 옮김, 《사회가 자살시킨 자, 반 고흐》 (읻다, 2023년), 조동신 옮김,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도서출판 숲, 2003년, 절판)





* 58쪽




 

 우리는 우리 삶의 질료가 갇혀 있는 이 같은 고통을 인식하지만, 베이컨은 그것에 예술이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어느 정도 예민함의 차원에서는 사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그것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림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랭보의 “나는 나의 풍요가 어디서나 피로 얼룩졌으면 좋겠어”라는 싯구[주3]에 그것이 있다.

 

[주3] ‘시구(詩句)’가 올바른 표현이다. 인용된 시구가 있는 시의 제목은 『착란 I: 어리석은 처녀』다.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년).





* 78쪽




 

 조르주 바타유는 라스코의 벽을 마주하고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 풍요로움의 놀라운 광채를 위해 태어났다고 느낀다.”

   

[주4] 조르주 바타유, 차지연 옮김,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 마네》 (워크룸프레스, 2017년).





* 119쪽




 

 질 들뢰즈는 그가 베이컨에 관해 쓴 저서[주5]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불쌍한 고기 같으니!” 이보다 더 진실한 외침은 없다. 그날 밤 베이컨의 그림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주5] 질 들뢰즈, 하태환 옮김, 《감각의 논리》 (민음사, 2008년).





* 128쪽




 

 랭보의 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열쇠’라는 시구[주6]는 나를 꿈꾸게 한다.

   

[주6] ‘사랑의 열쇠’는 『삶』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온다. 출전: 랭보, 김현 옮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2016년).





* 163쪽




 

필립 솔러스 →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 166쪽




 

 15세기에 회화 예술을 이론화한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란 “분수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썼다. [주7]


[주7]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김보경 옮김, 《회화론》 (기파랑에크리, 2011년), 노성두 옮김, 《알베르티의 회화론》 (사계절, 2002년, 절판).





* 177~178쪽







 

 195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여러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레슬링 장면을 기록한 뮤브리지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두 인물’ 또는 ‘레슬러’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뮤브리지 → 마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

 




* 217쪽




 

 앙드레 브르통은 <나드자>(Nadja)[주8] 서두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선호했다.

   

[주8] 앙드레 브르통, 오생근 옮김, 《나자》 (민음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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