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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연극제 대상 기념 앵콜 공연
<평화>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
원작: 아리스토파네스
연출, 창안: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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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플라톤(Plato)의 대화편 《향연》은 소크라테스(Socrates)와 그의 친구들이 술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향연》 (아카넷, 2020년)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플라톤 전집 1: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도서출판 숲, 2017년)
술 잔치에 참석한 아리스토데모스(Aristodemus)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날이 밝아오는 무렵에 잠에서 깨어난 그가 본 것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요란했던 술 잔치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비극 작가 아가톤(Agathon),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였다. 아리스토데모스의 증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두 사람 앞에서 비극 작가와 희극 작가는 같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향연》 223d). 지칠 대로 지친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잠들어버렸고, 소크라테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향연》은 이렇게 끝이 난다.
* 천병희 《그리스 비극의 이해》 (문예출판사, 2002년)
그리스 비극과 희극을 모두 번역한 천병희 교수는 《향연》의 결말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비극과 희극을 다 쓸 줄 아는 시인’으로 해석했다(《그리스 비극의 이해》, 16쪽).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13년)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투키디데스, 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서출판 숲, 2011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을 현대극으로 다시 만든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의 《평화》는 ‘희비극’이다. 희비극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비극으로 시작해서 희극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희비극의 주인공은 비극적 파탄에 이르게 되지만, 상황이 역전되어 행복을 맞이한다.
작품의 주인공 트리가이오스(Trygaeus, 남우희 분)는 길고 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쳐 있다. 그는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트리가이오스]
“평화를 되찾아 무너진 세상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는 인간 세계의 전쟁을 구경만 하는 신들을 직접 만나 따지기 위해 커다랗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풍뎅이 막시무스(김학수 분, 원작은 쇠똥구리다)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트리가이오스의 하인(이영찬, 강민주 분)은 그가 미쳤다면서 비웃는다.
트리가이오스는 하늘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신은 헤르메스(Hermes, 유지원 분)다. 제우스(Zeus)와 다른 신들은 전쟁이 싫어서 다른 곳에 가버렸고, ‘전쟁(정성태 분)’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전쟁’이 절구통에 모든 나라를 넣고 절굿공이로 빻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을 따르는 두 명의 부하 ‘혼란이(전소영 분)’와 ‘절망이(성창제 분)’는 절굿공이를 들고 다닌다. 기세등등한 ‘전쟁’ 패거리는 ‘평화(이연주 분)’를 구덩이에 가둔다.
트리가이오스는 ‘평화’를 구출하기 위해 헤르메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신들에게 전쟁의 위험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을 피해 멀리 떨어져 살아온 신들(최예나, 이영찬, 강민주 분)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트리가이오스는 전쟁을 방관하는 신들의 태도에 절망하지만, 다행히 ‘평화’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한 희극’이다. 그러나 연극 《평화》는 희극에 가려진 ‘현실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원작처럼 희극을 끝날 뻔한 작품이 비극으로 전환된다.
소녀(김강원 분)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인물이다. 소녀는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과 자신의 꿈을 무너뜨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들려준다.
[소녀]
“당신을 알까? 당신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다. 꿈꾸고 싶다.”
소녀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소녀는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어린이다. 소녀의 독백은 우리가 잊기 쉬운 진짜 비극이다. 원작 《평화》는 전쟁에 지친 ‘어른’이 평화를 찾는 이야기라면, 연극 《평화》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느낀 전쟁과 평화 이야기다.
<백치들>은 2023년에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사건》(원작 허선혜, 연출 이성재)를 만들었으며, 올해에도 청소년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작년에 극단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연극 공연 프로그램인 ‘신나는 예술 여행’을 진행했다. 연극 《평화》는 어린이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아동극이자 청소년극이다. 그리고 자녀에게 평화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들이 보면 좋은 작품이다. 연극 《평화》는 극단 <백치들>이 꾸준히 만들어 온 연극관(演劇觀)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연극 《평화》는 결말이 없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크림반도와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전쟁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전쟁)과 희극(평화)을 만들 줄 아는 작가가 인간이다. 그러나 연극은 비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고생하다가 끝내 희망을 찾게 되는 희비극적인 존재다. 연극은 전쟁광들이 만드는 비극이 계속되어도, ‘평화’라는 희극을 ‘다 함께’ 만드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말자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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