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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썅마이리딩-천의 얼글
  • 고목 원더랜드
  • 후카사와 유
  • 20,700원 (10%1,150)
  • 2024-11-26
  • : 645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5점  ★★★★☆  A





‘고목에 꽃이 핀다’라는 속담이 있다. 초라한 집안에 경사가 일어난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희망이 말라버린 사람은 ‘마른나무에 꽃이 피랴?’라고 되묻는다. 이 말은 애당초 기대하지 말자는 속담이다. 불가능한 일에 희망을 품는 사람에게 경고하는 속담이 ‘마른나무에 물 내기’다. 물기가 사라진 나무에 물 한 방울이 나올 수 없다. 그래도 마른나무는 쓸모 있다. 겨울이 되면 마른나무에 따끈한 불꽃이 핀다. 마른나무는 찬 바람에 약한 인간을 위해 아궁이에서 화장(火葬)된다.


사람들은 마른나무를 죽은 나무로 대한다. 하지만 마른나무는 죽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 생기가 없어서 땅에 축 늘어져 잠을 잔다. 사람들은 마른나무를 땔감으로 쓰지만, 정작 마른나무는 장작이 되고 싶지 않다. 마른나무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 


나무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들은 마른나무를 존중한다. 이들은 마른나무에 버섯이 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때부터 마른나무에 생기가 돋는다. 마른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땅에 누운 마른나무는 이끼 담요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마른나무에 버섯과 이끼가 자라면 곤충이 다가온다. 버섯과 이끼는 곤충의 양식이다. 곤충은 마른나무에 보금자리를 짓는다. 버섯, 이끼, 곤충이 달라붙어도 마른나무는 너그럽다. 마른나무는 자신의 몸에 작은 생명들을 활짝 피우면서 천천히 시들어 죽는다.


《고목 원더랜드: 말라 죽은 나무와 그곳에 모여든 생물들의 다채로운 생태계》는 마른나무에서 시작되는 생태계를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졸참나무 고목이다. 저자는 졸참나무 고목에 사는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마른나무 위에 펼쳐진 세계를 펜으로 직접 그렸다. 저자는 마른나무를 ‘모든 생명체가 투숙하는 호텔’로 비유한다. 마른나무 호텔의 첫 손님은 균류다. 맨눈으로 보기 힘든 아주 작은 손님이다. 균류가 마른나무 호텔에 오래 머무르면 그 안에 있던 포자가 발아하면서 곰팡이실(균사, 菌絲)이 생긴다. 곰팡이실이 커지면 버섯이 된다. 곰팡이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버섯의 싹이다. 다람쥐는 마른나무 호텔에 푸짐하게 차려진 버섯을 먹으러 오는 귀여운 손님이다. 다람쥐가 분주하게 마른나무 위를 지나가면 아주 작은 구멍이 생긴다. 다람쥐의 조그만 발자국이 많아지면 여러 종의 이끼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마른나무에 물 한 방울 짜내기 힘들지만, 그래도 이끼가 충분히 자랄 수 있는 물기를 머금고 있다.


마른나무가 기운 없이 누워 있어도 지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마른나무는 썩으면서 천천히 죽는다. 불에 타서 죽으면 마른나무 속에 있던 탄소가 한꺼번에 나온다. 그러나 천천히 죽어가는 마른나무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 않는다. 탄소 일부는 대기로 방출되지만, 천천히 나온 탄소는 흙을 튼튼하게 만드는 영양분이 된다. 마른나무가 하는 일을 ‘탄소 저류(貯留)’라고 한다.


사람들은 땅에 쓰러져 있는 고목을 볼품없는 쓰레기로 여긴다. 하지만 마른나무는 새로운 숲이 시작되는 씨앗이다. 마른나무도 숲의 일부다. 저자는 가능한 한 마른나무를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을 권한다. 이끼 담요를 덮은 마른나무에 어린나무(실생, 實生)가 자라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마른나무에도 어린나무가 자라기도 한다. 


너무 못생긴 마른나무는 목재로 쓸 수 없다. 그렇지만 돌고 도는 생태계의 과정을 알려주는 교재가 될 수 있다. 마른나무는 누워서 흙이 된다.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나무로 태어나 우뚝 선다. 마른나무에 절대로 꽃이 피어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지쳐 쓰러진 마른나무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여전히 살아 있다. 아주 길고 느린 잠에 빠져 있다. 마른나무를 함부로 뜨거운 불로 깨우지 마라. 자고 있어도 우리를 위해 느릿느릿 일하고 있다. 잠든 나무에 나무가 핀다. 






※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6쪽, 「감수자의 글」 중에서





 나무의 주요 줄기 성분인 난분해성의 셀룰로오스[주1]와 리그닌을 분해할 수 없다. 이때 등장하는 곰팡이가 우리가 흔히 버섯이라고 하는,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스[주1]와 리그닌을 분해할 수 있는 ‘목재부후균’이다.

 


[주1] 셀룰로스(cellulose)와 셀룰로오스는 섬유소의 또 다른 용어다. 셀룰로스, 셀룰로오스 둘 다 쓸 수 있다.





* 113쪽








수잰 시마드 → 수전 시마드(Suzanne Simard) [주2]



[주2] 76쪽에 ‘수잔 시마드’로 표기되어 있다. 수전 시마드는 식물의 뿌리와 곰팡이실의 공생관계가 숲의 성장에 기여하는 사실을 주목한 생태학자다. 그녀는 서로 다른 종의 식물이 서로 소통하면서 자라는 관계를 월드 와이드 웹(WWW)에 빗대어 우드 와이드 웹(WWW, 숲의 인터넷)으로 표현했다. 수전 시마드의 저서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김다히 옮김, 사이언스북스)가 작년에 출간되었다.





* 249~250쪽

 

 소나무재선충병은 북미에서 들어온 소나무재선충이라는 몸길이 1밀리미터 정도의 선충이 일본 토종 솔수염하늘소를 매개충으로 하여 퍼지는 병이다. [주3]

 


[주3] 솔수염하늘소는 우리나라에도 서식한다. 북방수염하늘소도 소나무재선충의 매개충이다. (출처: 한국임업진흥원)







 






[주4] 저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모리구치 미쓰루(盛口滿)의 저서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 자연을 줍는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자신의 생태학 연구에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언급한다. 《고목 원더랜드》 뒤쪽에 ‘참고문헌’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국내 미출간’으로 되어 있다(참고문헌 374~375쪽). 《우리가 사체를 줍는 이유》는 2004년 가람문학사에서 출간되었고, 한동안 절판되었다가 2020년에 ‘숲의 전설’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로 다시 태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뇌의 신비를 밝혀가는 정보통합 이론》(박인용 옮김, 한언출판사, 2019년, 참고문헌 377쪽),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의 《이끼와 함께: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하인해 옮김, 눌와, 2020년, 참고문헌 380쪽에 책 제목이 다르게 나온다. 일본에 나온 번역서 제목인 ‘이끼의 자연사’로 되어 있다. ‘국내 미출간’ 표시가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도 ‘국내 미출간’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참고문헌 383쪽).









 

국내에 출간된 참고문헌을 정확하게 소개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의 ‘옥에 티’다. ‘과학을 읽고 즐기고 알아가는(플루토 출판사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출판사 소개 글이다)’ 독자를 위해서 출판사 편집자와 번역자는 참고문헌을 꼼꼼하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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