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3점 ★★★ B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 겸 칼럼니스트다. 2003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덕환 옮김, 까치, 초판 2003년 발행, 개역판 2020년 발행)는 과학 비전공자들이 많이 읽은 과학 도서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과학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브라이슨의 두 번째 과학 도서 《바디: 우리 몸 안내서》(The Body: A Guide for Occupants) 번역본의 책 뒷날개에 저자 약력이 있다. 브라이슨의 화려한 이력이 소개된 짤막한 소개 글을 한 번 보시라. 이 글에 브라이슨이 ‘데카르트 상(Descartes Prize)’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데카르트 상은 유럽연합(EU)이 만든 상이다. 2000년에 처음 수여되었고 2007년에 중단되었다. 그런데 데카르트 상은 과학적 성과를 이룬 과학 연구팀에게 주었던 상이다. 브라이슨이 받은 상의 정확한 명칭은 ‘The Descartes Prize for Science Communication’이다. 이 상은 과학 전문 작가 또는 과학 관련 미디어(TV 프로그램, 웹사이트 등) 제작자에게 수여했으며 브라이슨은 2005년 수상자다.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nicator)를 위한 데카르트 상은 2007년에 ‘Science Communication Prize’라는 이름으로 분리되었다.
과학 도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과학 해설자와 도서 인플루언서에게 간택을 받아야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수많은 과학 도서는? 이 책들은 서점 진열대 어딘가에 머무르면서 독자들의 손길을 가만히 기다린다. 과학 도서는 애서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분야의 책이 아니다. 과학 도서를 빙 둘러싼 편견은 독자들의 접근을 막는 벽견(僻見)이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벽에 ‘과학 도서는 과학자나 과학을 전공한 작가만 쓸 수 있다’ 또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과학자가 쓴 과학 도서는 잘 쓴 책’이라는 편견이 적혀 있다. 이 편견에 사로잡힌 과학 비전공 독자들은 과학 전공자가 쓴 책을 어렵고 재미없다고 지레짐작한다. 몇몇 독자는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과감히 떨쳐내고 읽을만한 과학 도서를 찾으러 서점과 도서관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책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베스트셀러 과학 도서다. 대형 서점은 ‘잘 팔리는’ 과학 도서를, 도서관은 ‘대출 횟수가 많은’ 과학 도서를 편애한다.
빌 브라이슨은 독자들이 과학 도서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작가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서문에서 어린 시절에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과학 도서’를 만난 경험을 언급한다. 그는 이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과학을 엄청나게 재미없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브라이슨은 뒤늦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전문가를 직접 만나거나 그들이 쓴 책들을 참고하면서 ‘너무 어렵지 않고, 누구나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과학 도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이 바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브라이슨은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중년이었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는 2019년에 출간되었으며 이때 브라이슨의 나이는 60대 후반이다. 나이와 과학 비전공은 과학과 친해지기 어려운 장벽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바디: 우리 몸 안내서》는 브라이슨이 혼자 쓴 책이지만, ‘여러 명의 작가의 책들’이 뭉쳐진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권의 과학책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의 과학책을 한꺼번에 보고 있는 것이다. 브라이슨이 참고한 책들을 쓴 저자 대부분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과학자나 과학 전문 작가다. 국내에 출간된 번역본이 최소 두 권 이상 번역된 작가들을 언급하자면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80쪽),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11쪽과 280쪽),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 124쪽) 등이 있다.
브라이슨이 《바디: 우리 몸 안내서》에서 많이 언급한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권위 있는 진화생물학자다.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 313쪽)은 요리 행위를 인류의 진화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주목한 진화생물학자다. 여담으로, 랭엄의 가르침을 받은 학부생은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이며 베스트셀러 과학 도서를 펴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버네사 우즈 공저, 이민아 옮김, 디플롯, 2021년)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다.
브라이슨은 과학자들의 말과 글을 알기 쉽게 썼다. 우리 몸에 대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선별하여 정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식으로 둔갑한 비과학적인 내용들도 언급한다. 우리 뇌는 평생 10퍼센트만 사용한다는 믿음(93쪽), 다섯 가지 맛을 표시한 혀 지도(145쪽), 하루에 물 8잔씩 마셔야 한다는 의학 전문가들의 주장(325쪽) 등은 건강 도서나 쇼 닥터(show doctor)가 자주 출연하는 방송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잘못된 통념이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에 잘못된 통념의 덫에 걸린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노벨 화학상과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은 비타민 C를 많이 섭취하면 암을 포함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속 연구들은 그의 비타민 C 사랑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지만, 지금도 비타민 C를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의사들이 있다.
과학자라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 건 아니다. 그들도 착각한다. 때로는 과학적 검증을 소홀히 한다. 이들은 자신의 견해가 틀렸는데도 끝까지 옳다면서 고집을 부린다. 이런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학술 논문과 과학 도서를 완벽하게 잘 쓰는 똑똑한 과학자 이미지가 실제와 다른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허술한 과학자들이 있다고 해서 과학의 가치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론’이라고 부르는 과학 지식은 처음에는 과학자들의 오류와 잠정적인 결론에 가까운 가설로 취급받았다. 과학자들은 오류가 정말로 틀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혹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반복한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과학을 좋아할 수 있다. 호기심과 자신의 견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있으면 과학을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거나 글을 쓸 수 있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누구나 ‘과학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럴듯한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이 타당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지식들과 합치하는지 검토하면서, 또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실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은 과학을 하는 중이다. 이러한 생각 습관을 더 많이 실천할수록 당신은 과학을 더 잘하게 된다. 사물의 핵심을 파고드는 일은 아마도 이 행성 위에 사는 모든 존재들 중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희열을 안겨 준다. 우리는 지적인 종이고 지능의 사용은 우리에게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뇌는 근육과 같다. 생각이 잘될 때,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이해는 일종의 황홀경이다.
(칼 세이건,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33~34쪽)
빌 브라이슨은 훌륭한 작가이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실수할 수 있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가 출간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 57쪽
세포 수준에서 보면, 균류는 결코 식물과 비슷하지 않다. 광합성을 하지 않으므로, 엽록소가 없으며, 따라서 녹색도 띠지 않는다. 균류는 사실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 균류가 별개의 생물임이 인정되고 별도의 생물계로 분류된 것은 1959년이 되어서였다. 균류는 기본적으로 두 집단으로 나뉜다. 곰팡이류와 호모류이다.
곰팡이는 균류에 속한다. 따라서 페니실린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로 알려진 푸른곰팡이는 녹색을 띠는 균류다. 그렇다고 모든 푸른곰팡이가 푸른 건 아니다. 푸른곰팡이의 종류가 많아서 여러 가지 색깔을 띠는데, 적갈색을 띠는 것도 있다.
* 113쪽
다윈이 깨달은 것은 모든 아기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얼굴은 표정이 아주 풍부하며 즉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것 말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다른 어떤 모양보다도 얼굴, 아니 얼굴의 일반적인 형태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신생아의 시력은 얼굴의 형태와 색깔을 알아보지 못하는 원시(遠視) 수준이다. 신생아의 후각은 시각보다 더 발달했다. 신생아는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몸과 옷에 밴 체취를 통해 자기 곁에 어머니가 있는지를 확인한다(참고문헌: 요하네스 프라스넬리, 이미옥 옮김, 《냄새의 쓸모: 일상에서 뇌과학까지》, 에코리브르, 2024년). 브라이슨은 자신의 책에 ‘아기는 냄새로 어머니를 식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썼다(131~132쪽).
* 208쪽
그는 겨우 서른여섯 살이던 1939년에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상을 받으러 갈 수가 없었다. 노벨 평화상이 유대인에게 수여된 뒤로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인의 수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193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독일의 화학자 아돌프 부테난트(Adolf Butenandt)다. 그는 나치 정권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1949년에 상을 받았다. 193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카를 폰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 1889~1938)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반전 운동을 전개한 언론인이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독일을 장악하자 반 나치즘 운동을 펼쳤다. 나치는 폰 오시에츠키를 체포하여 수용소로 보냈다. 폰 오시에츠키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1936년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치 정권은 독일인을 모독한 시상식이라면서 비난했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브라이슨은 히틀러를 분노하게 만든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유대인이라고 했는데, 폰 오시에츠키는 유대인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신자이며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다.
* 350쪽
창자암은 거의 다 큰창자에서만 생기며, 작은창자에는 암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큰창자는 대장(大腸, large intestine), 작은창자는 소장(小腸, small intestine)이다. 본문에 나온 창자암은 대장암이다. 매우 드물게 소장암이 발생한다.
* 364쪽
사람의 멜라토닌 생산량은 나이를 먹으면서 크게 줄어든다. 70세에는 20세 때의 4분의 1밖에 만들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우리 뇌 한가운데에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 솔방울샘(pineal gland)이 있다. 솔방울 모양의 내분비기관으로 이 부위의 다른 이름은 송과선이다. 나이가 들수록 솔방울샘의 크기가 줄어들며 석회화가 생긴다. 이와 관련해서 송과선 기능 이상(Pineal gland dysfunction)이라는 정식 의학 용어도 있다(출처: 질병관리청). 이러면 솔방울샘의 멜라토닌 합성 능력이 떨어진다.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들면 불면증이 일어난다.
* 500~501쪽
맬버른에 있는 플로리 신경과학과 정신건강 연구소는 양을 이용해서 폐경을 연구한다. 양이 우리 외에 폐경을 겪는다고 알려진 거의 유일한 육상동물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이다. 고래는 적어도 2종이 폐경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 왜 어떤 동물은 폐경을 겪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까지 밝혀진 폐경하는 고래는 3종이다. 범고래, 들쇠고래, 흑범고래다. 폐경하는 고래는 사회성이 높다. 과학 저널 <동물학 최전선>에 실린 글에 따르면 공동체 생활하는 다른 돌고래 종에도 폐경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 <사람과 범고래는 왜 중년에 폐경을 할까?>, 한겨레, 조홍섭, 2018년 7월 3일 입력)
미국 연구팀은 아프리카 우간다 서부 키발레 국립공원에 사는 야생 침팬지들을 관찰하면서 폐경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출처: <야생 침팬지 폐경 첫 확인…영장류에선 사람 이어 두 번째>, 사이언스타임즈, 2023년 10월 27일 입력)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89쪽
우겨넣는 → 욱여넣는
* 146쪽
1975년에 유명한 복어 중독 사건이 벌어졌다. 유명 배우인 미츠고로 반도[주1]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무시하고 복어 요리를 네 접시나 먹었다. 딱하게도 그는 4시간 뒤에 질식사했다.
[원문]
In one famous case in 1975, a well-known actor named Bando Mitsugoro ate four helpings of fugu-despite pleadings to stop-and died wretchedly four hours later of asphyxiation.
[주1] 미츠고로 반도(坂東 三津五郎)는 일본 가부키 전문 배우다. 가부키는 에도 시대에 시작된 전통 연극이다. 일본에 100여 개가 넘는 가부키 가문이 있다. 이 중에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4대 가문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재벌가 못지않은 명문가로 대우받는다. 가부키 가문에 태어난 자녀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가부키 배우가 된다. 이들은 본명이 아닌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이름으로 활동한다. 이런 이름을 ‘묘세키(名跡)’이라 한다. 미츠고로 반도는 묘세키다. 그래서 미츠고로 반도로 활동한 가부키 배우는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묘세키는 직계 자손이 물려받는 이름이라서 역대 가부키 배우들을 언급하면 ‘초대, 2대, 3대, 4대’ 식으로 구분해서 표기한다. 복어 중독으로 사망한 미츠고로 반도는 1973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인간 국보’로 지정받은 ‘8대 미츠고로 반도’다.
* 159쪽
발렌타인 데이 → 밸런타인데이
* 225쪽
유명한 아일랜드의 거인인 찰스 번(Charles Byrne, 1761-1783)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번은 키가 231센티미터로서 유럽에서 가장 컸다. 해부학자이자 수집가인 존 헌터가 그의 뼈대를 몹시 탐냈다. 시신이 해부당할까봐 우려한 번은 자신이 죽으면 관은 멀리 바다고 싣고 가서 깊은 물에 가라앉히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헌터는 번이 계약을 맺었던 배의 선장을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번의 시시은 런던 얼스코트에 있는 헌터의 집으로 향했다. 헌터는 아직 온기가 다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시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번의 호리호리한 뼈는 런던에 있는 왕립외과대학의 헌터 박물관에 전시되어왔다. 그러다가 2018년에 박물관이 보수 공사를 위해서 3년간 문을 닫기로 하자, 번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시켜서 그가 원래 요구한 대로 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주2]
[주2] 2023년에 헌터 박물관은 찰스 번의 유골을 전시하지 않기로 공식 발표를 했다. 유골이 있었던 자리에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가 그린 찰스 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276쪽 원주
피브리치우스 낭 → 파브리치우스 낭(Fabricius 囊)
* 478쪽
맥스 퍼루츠 → 막스 페루츠(Max Peru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