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듯 글자를 눈으로 어루만진다
초록연필 2019/02/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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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 풍경
- 유지원
- 13,500원 (10%↓
750) - 2019-01-30
: 3,709
유지원의 <글자풍경>. 이 책을 다 읽고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책을 양손으로 꼭 쥐었다가 놨다. 글자가 2D의 세계가 아니라 아주 물리적, 생물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된 세계라는 것을 흡수하고 나니 더욱 뿌듯해진 마음에.
사진으로 지하철 표지만 봐도 직감적으로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있었던 게 비단 언어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짜릿함부터 나눠야겠다. 동글동글하고 단정한 런던의 유명한 지하철 표지 Underground는 존스턴체, 뉴욕의 지하철 표지는 깔끔한 헬베티카체(Helvetica)라는 것, 스코틀랜드의 반지의 제왕에 나올 법한 폰트는 바로 언셜(uncial)체라는 사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특징적인 외모나 기후 뿐 아니라 그 폰트가 그 나라나 도시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말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의 글자 풍경에서 시작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지나, 한글 풍경까지 오는 길이 아주 매끄럽게 이어졌다. 네티즌들이 "나 지금 진지한 궁서체로 말하는거야!" 하는 건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폰트는 한 캐릭터에 맞먹는다.
저자는 흘림체를 일컬어 '인간 신체의 한계가 만든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글자 쓰기가 고단해 타협한 게 바로 흘림체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신체의 한계야말로 인간만의 매혹일지도 모르겠다.내 글이 닿을 그대를 향해 글씨를 쓰면, 빠르게 흐르며 달려 나갈 때조차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 것이다."
나는 이제 종이나 모니터, 길거리에서 어떤 글자건 만날 때마다 폰트 이름을 궁금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폰트 중에서 이 사람은 왜 이걸 골랐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유난히 눈을 상쾌하게 해 주는 글자체를 만나면 제철 과일을 맛본 것처럼 기분이 좋을 것이다.
연필로 쓰진 않았지만, 연필을 쥔 마음으로 썼으니 이 글은 류양희 디자이너의 '고운한글 바탕'이라고 여기며 읽어주시길. 이제 또 새로운 글자풍경을 찾아 두리번거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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