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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탐정
  • 로버트 크레이스
  • 12,600원 (10%700)
  • 2017-12-30
  • : 113

형사(탐정) 캐릭터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엘비스 콜은 뭐랄까, 좀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이쪽 동네의 다른 인물과는 다르게 장난기도 넘치고, 또 감정도 대단히 풍부하거든요. 『L.A. 레퀴엠』(이하 『레퀴엠』에서 자기 슬픔을 감추지 않고 오열하던 모습은 좋은 의미에서 충격적이었고, 심지어 그 모습이 너무나 설득력 있어서 마음으로 따라 오열했어요.


그렇다고 넘치는 감정 때문에 일 처리가 프로답지 못하냐면 그건 아니에요. 모든 수사 과정 내내 냉철하고 철두철미하진 않지만, 프로답다는 수식어가 어색할 정도는 아니죠. 어려운 사건들이 그의 추리로 풀리니까요(예외가 있다면, 조 파이크가 주인공이었던 『워치맨』 정도?)그런데 또 그게 전부인 것 같지는 않고요. 보통 이런 위악은 사연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감정적이면서도 일은 잘 하는데, 사연까지 있을 것 같은 캐릭터. 좋아하지 않기가 힘들지 않나요? 


『마지막 탐정』(이하 탐정)은 이런 엘비스 콜의 캐릭터를 마음껏 활용한 이야기입니다. 『레퀴엠』 때부터 엘비스에게는 루시 셰니에라는 애인이 있었어요. 『레퀴엠』에서의 어떤어떤 일 때문에 헤어진 줄 알았는데, 그때까지 잘 만나고 있더군요. 그리고 엘비스도 무척 사랑하는 루의 아들 벤 셰니에도 있어요. 루시가 출장을 간 사이, 엘비스는 벤을 돌보고 있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이 그렇듯, 벤도 엘비스를 잘 따르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벤이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빡한 사이에 사라지고 맙니다. 벤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옵니다. 이 납치는 엘비스가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복수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눈여겨본 대목은 이렇습니다. 엘비스 콜은 과연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냉정함의 끝판왕이라 해도 냉정해질 수가 없는 상황인데, 게다가 엘비스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거든요. 달리 말해, 그가 활극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단 뜻이죠. 더불어 엘비스의 위악 뒤에 숨은 사연을 알아낼 기회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영혼의 파트너’ 조 파이크와 함께 엘비스는 벤을 찾으러 나섭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활극이 펼쳐지기 시작하죠. 가뜩이나 제멋대로이고, 또 제멋대로 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엘비스를 작가는 더욱 옥죕니다. 벤의 친아버지인 리처드 셰니에의 등장이 그렇죠.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엘비스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데, 나름 권력도 없지 않아서, 그걸 이용해 경찰을 움직여요. 엘비스를 수사에서 제외시키려고요. 협박 전화를 먹잇감 삼아 엘비스와 루시와의 사이도 이간질하고요. 그러나 엘비스는 절대로 이런 일을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긴장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엘비스의 추리가 벤의 주변에 얼씬조차 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에요. 자, 함께 손잡고 긴장의 지옥으로 출발합시다.


이 과정이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면, 엘비스가 베트남전 참전 경력을 살려 벤에게 다가가는 대목들은 (다른 범죄물에서 그렇듯) 쾌감으로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추리 과정이 좀 색다릅니다. 추리 과정의 많은 부분이 엘비스의 과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요. 엘비스의 과거는 사건을 풀기 위한 단서로의 역할 이상을 수행합니다. 엘비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죠. 엘비스가 왜 엘비스가 되었는지, 엘비스가 지금 해나가고 있는 추리는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엘비스가 이렇게 왜 유쾌해졌는지(이 부분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 설명은 작품에 맡겨두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감정을 이입하기에 좋은 범죄물이란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이 시리즈가 안 그랬던 적은 없지만, 이번에도 멋지게 성공해냈어요. 개인적으로는 사건 추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엘비스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죄책감, 사명감, 절박함 같은 감정들을 엘비스와 함께 충만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엔 이 모든 감정은 즐거움으로 변하죠. 어디까지나 대리체험이니까요.


여하튼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레퀴엠』에 비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결코 실망스럽진 않았습니다.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분들에겐 추천. 단, 이 시리즈를 처음 읽는 분이시라면 전작 『레퀴엠』을 먼저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거든요.


덧붙임. 반가운 인물 하나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아는 딱 그 사람처럼 나타나요.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직접 목격하고 나니 이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비밀로 남겨두겠습니다. 직접 만나는 순간의 쾌감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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