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작가가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해리 보슈와 미키 할러는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해리 보슈가 진지하면서도 독고다이에 고독을 곱씹는 인물이라면 미키 할러는 어쨌든 유쾌하면서도 쿨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질적 차이보다도 중요한 건 진실을 다루는 둘의 태도예요. 해리 보슈에게 진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고, 진실 앞에선 그 누구와도 어떤 위협과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키 할러는 반대로, 진실은 1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야 어떻든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관철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갖다 붙여대죠. 그에게 진실은 그에게 철저히 ‘냉소’의 대상입니다.
네 번째 미키 할러 시리즈인 『다섯 번째 증인』은 이런 미키 할러의 냉소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입니다. 일단 사건의 얼개부터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에 은행에 집을 빼앗기게 된 리사 트래멀은, 이 사태와 발맞춰 불어 닥친 불경기 때문에 형사 사건을 수임하지 못해 민사사건 수임에 나선 마이클 할러에게 변호를 청탁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건은 (당연하게도) 형사재판에서 일어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은 미키 할러가 리사 트래멀의 체포 소식을 듣게 되거든요. 바로 리사의 집을 압류하려는 은행의 부행장을 살해한 혐의로 말이죠.
극적으로 자기 분야로 돌아온 미키 할러는 작정한 듯 리사 트래멀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키 할러의 목표입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리사 트래멀의 무죄 판결이에요. 그는 리사 트래멀의 진실에 관심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철저히 무죄 판결 하나만을 보고 움직입니다. 진실에 대해선 철저히 냉소로 일관하죠.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참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을 아이 취급하고, 그가 내내 리사 트래멀에게 “나는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요.
소설의 재미 대부분은 미키 할러의 이 냉소에서 비롯됩니다. 법정에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고를 향해 잽을 날리고, 또 상대방의 잽을 받아내고 있어요. 이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단언컨대 이전의 시리즈 이상이라고 장담하는 바입니다. 유능한 검사를 바꾸기 위한 공방, 증거 채택을 위한 검사와 변호사의 머리싸움, 같은 증거를 배심원에 다르게 설득하기 위한 논리싸움까지. 개인적으로 법정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모든 긴장과 카타르시스는 미키 할러의 냉소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다섯 번째 증인』이 더 흥미로운 건 건, 미키 할러의 냉소에 대한 독자들의 은근한 동조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소설 속에서나마 미국의 법정 제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미키 할러의 냉소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고인, 변호사, 검사의 손짓 하나가 유무죄를 가르는 시스템이다 보니 ‘보이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보이는 것’들이 오가는 법정에서의 전쟁이 더욱 치열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요?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키 할러의 냉소는 법정의 사소한 다툼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넘어, (무언가 이상하긴 해도)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미키 할러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리사 트래멀의 무죄 평결을 받아냈고, 독자 또한 배심원과 같은 곳으로 인도하지만, 이내 어떤 일을 계기로 리사 트래멀이 진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미키 할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반전을 만들어냈던 거죠. 진실에 대한 냉소를 과신한 나머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 형국인데, 어디 미키 할러만 그랬겠습니까. 저도 뒤통수가 꽤나 얼얼하던 걸요.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건 순전히 (망상일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추측인데요. 이런 재미난(?) 반전을 이끌어낸 것은 플롯에 더해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작가의 불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미키 할러가 무죄 평결을 받아낸 과정을 살펴보건대, 미국 법정은 선전 선동이 단서를, 나아가 진실을 이기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페르소나인 해리 보슈가 그토록 갈구하는 진실이 이기는 곳이 아니에요. 그 누구보다도 ‘미국 변호사’다운 미키 할러가 미국 법정에서 요구하는 행동을 따르다, 고꾸라진 거죠. 이게 정말이라면, 음, 뭐랄까, ‘반전 하나에도 이렇게 뜻깊은 의미가 있었구나’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해석이 과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족일 뿐입니다. 애당초 창착자들이 이런 식으로 창작을 이렇게 하지도 않는 것 같으니 재미로나 읽어주세요.
어쨌든 결론적으로 『파기환송』 이후 1년 넘게 기다린 보람을 충만하게 채워주었습니다. 주워듣기로는 다음 소설인 『낙하』도 올해 안에 출간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코넬리 마니아, 코넬리 사랑꾼인 저로서는 나름 괜찮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아, 『다섯 번째 증인』이 그 괜찮은 한 해의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