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수잔에게 전남편 에드워드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자기가 쓴 소설 한 편을 봐달라는 이야기예요. 당연히 수잔은 어리둥절합니다. 왜냐하면, 수잔과 에드워드는 이혼한 지 20년이 지났거든요. 둘이 부부였던 건 “비현실적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의례적인 안부를 빼면 연락한 적도 없어요. ‘여전히 당신을 잊지 않고 있는 에드워드’라는 서명이 같이 딸려 왔는데, 사실 이건 엄청난 민폐죠. 저 같아도 짜증이 날 것 같아요. 그러나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결국 소설을 보내라는 답장을 전합니다. 쿨하고 싶었으니까요.
영화 제목으로 알려진 ‘녹터널 애니멀스’(이하 ‘애니멀스’)는 『토니와 수잔』의 소설 속 소설의 제목입니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부러운 가족 이야기로 출발하는 소설이죠.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토니는 여름 방학을 맞아 아내 로라, 딸 헬렌과 함께 메인 주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이들은 꽤나 사이가 좋은 가족이에요. 딸이 난데없이 부르기 시작한 캠프 송을 가족이 모두 함께 부를 정도로 말이죠. 심지어 그 딸은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다 자랐습니다. 음, 우리나라에서 다 자란 딸과 노래를 부르는 아빠라…. 상상하기가 어디 쉽나요?
그러나 이런 평화도 잠시, 이내 가족에게는 ‘어둠의 다크’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대륙다운 거리를 밤새 운전하던 도중에 불한당 같은 운전자들을 만나게 됐거든요. 시비를 걸어오는 불한당들을 벗어나기 위해 토니는 애를 써보지만, 결국 일이 꼬이고 맙니다. 피하던 도중 불한당들의 차와 추돌을 하게 되고, 심지어 타이어가 펑크가 나기까지 합니다.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어요. 그뿐인가요? 가족의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아래 이야기는 스포일러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토니와 그 소설을 읽는 수잔을 모두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먼저 눈이 갔던 건 토니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사건 자체가 극적입니다. 불한당들에게 무기력하게 아내와 딸을 빼앗긴 토니는 결국 가족의 시신을 만나고 맙니다. 아무리 지켜보는 입장이라 해도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출판사가 이야기하는 ‘심리 스릴러’의 관점에서도 토니의 변화는 매우 두드러집니다. 비극을 맞기 전까지 토니는 그야말로 ‘모범 시민’이었습니다. 좋은 남편이자 아빠, 모범적인 교수였죠. 차 한 대 없이 뻥 뚫린 도로에서도 시속 100킬로미터를 강박적으로 넘기지 않을 정도로 질서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고요. 그러나 로라와 헬렌이 죽고 난 뒤에는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이 배신당하면서 그 가치를 의심하게 되죠. 이 과정을 우리는 넋 놓고 쫓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토니와 수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말이 ‘넋 놓고 쫓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애니멀스’, 그리고 『토니와 수잔』은 잘 쓴 스릴러 소설입니다. 수잔도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애니멀스’는 그들이 부부였던 시절 에드워드가 쓴 치기 넘치는 소설과는 딴판이었다는 걸 인정하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흠뻑 빠져 읽어가죠. 사건의 전개도 그녀의 마음에 꽤나 드는 편이고요. 이렇게 ‘애니멀스’는 수잔, 나아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애니멀스’만 놓고 보면 『토니와 수잔』은 한 편의 잘 쓰인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건 결국 ‘애니멀스’가 아니라 『토니와 수잔』입니다. 그 스릴러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소설이에요. 어디로 들어가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수잔의 마음속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연출한 긴장감 덕분에 일단 수잔은 ‘애니멀스’는 이 책에 빠져들어 가죠. 여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애니멀스’는 또 다른 긴장을 끌어냅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에드워드와 수잔의 옛 결혼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둘이 부부였던 시절, 에드워드는 대뜸 작가가 되겠다며 로스쿨을 휴학해버렸고, 심지어 글을 쓰기 위해 수잔을 남겨두고 한적한 시골로 떠나버립니다. 수잔이 멋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그녀는 이게 자기가 감수해야 할 일인 줄 알았죠. 그러나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에드워드의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 수잔이 이웃이던 아놀드와 바람이 나버렸고, 결국 둘은 서로의 배우자를 버리고 결혼하고 말아요.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무기력하게 수잔에게 버려졌고요(어디까지나 에드워드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로스쿨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버림당할 가능성도 매우 낮아졌을 테니까요).
이런 사연이 더해지면서 ‘애니멀스’는 단순히 ‘토니의 복수극’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수잔과 아놀드가 함께 꾸린 가정은 어딘지 모르게 토니의 가정과 많이 닮아 있거든요. 지켜야 할 아이들, 그걸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아놀드의 직업 등등. 그래서 ‘애니멀스’를 읽는 동안 수잔은 토니처럼 분노하고 토니처럼 복수를 원하죠. 그런데 자꾸만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놀드는 이 모든 걸 지켜낼 수 있을까? 토니처럼 모든 걸 홀랑 빼앗겨버리지는 않을까? ‘애니멀스’와 함께 의심의 씨앗이 수잔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놀드에 대한 수잔의 감정이 요즘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얼마 전 아놀드는 비서와 함께 또 바람에 빠져버렸거든요. 그러나 수잔은 번듯한 남편의 아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엄마 자리를 빼앗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놀드를 떠나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서 에드워드는 ‘애니멀스’를 통해 수잔에게 질문 거리를 던져준 겁니다. 과연 아놀드가 그 가정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그녀의 생각은 아놀드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게 됩니다(470). “그녀는 살아생전 다시 아놀드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보게 될지 궁금”해하죠.(481) 의심은 활짝 꽃을 피운 거죠.
모든 종류의 심리 묘사가 그러하듯 수잔이 ‘애니멀스’를 읽으면서 변하는 과정이 아주 극적으로 펼쳐지진 않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작가인 오스틴 라이트는 이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게 펼쳐냅니다. 잘 쓰인 소설이라는 뜻입니다. 수잔의 가정이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어요. 저는 뭐, 풍비박산 나는 모습을 그려봤습니다(혼자만 망할 수 없어서… 못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