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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산이 부서진 남자
  • 마이클 로보텀
  • 13,320원 (10%740)
  • 2015-10-13
  • : 724

파킨슨병 때문에 운영하던 병원 문을 닫아야 했던 조 올로클린 박사는 친구의 부탁으로 대학 강의에 나섭니다. 아픈 몸으로 강의를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그였지만 첫 강의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순간,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경찰에게 자살 협상을 부탁받은 선배 브루노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올로클린 박사에게 일을 맡긴 겁니다. 마뜩잖은 일이었지만 촉박했다고 채근하는 경찰 때문에 그는 다리로 향합니다. 끝내 박사는 협상에 실패했고, 다리 위에 매달려 있던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후 이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박사와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섭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합니다. 일단 단순 자살로 처리된 첫 번째 희생자가 실은 살해당해야 했다는 것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후에도 곳곳에 지뢰가 가득합니다. 범인은 자신을 숨기는 데 매우 능하고, 물리적인 흔적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그가 지닌 특수한 신분이 그걸 가능하게 하죠.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사와 경찰은 범인의 정체를 조금씩 밝혀가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더 큰 위기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죠. 


사람들은 ‘청와대 게이트’로 떠들썩한 요즘 시국을 흔히 ‘소설 같다’, ‘영화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소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다지 닮지 않았어요.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반드시 원인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체호프의 총’이 그걸 잘 설명하고 있죠). 잘 쓴 소설, 잘 만든 영화는 사실 이런 종류의 밑도 끝도 없는 비상식과는 거리가 멀죠. 소설이 이 규칙을 어기는 순간, 독자들은 강한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마이클 로보텀의 소설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일견 체호프의 총을 여기저기 잘 심어놓은 소설입니다. 희생자들이 살해를 당하는 과정,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는 동선,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계기까지 어느 하나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그만큼 설득력 또한 강하죠. 그러나 저는 결정적 한순간 때문에 이 책을 ‘마냥 좋은 소설’로 부르기가 꺼려집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 박사가 끝까지 발을 빼지 않는 이유가 그 순간입니다. 


범인의 범행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수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범인은 끊임없이 희생자를 찾아내고 살해하거나 살해하기 직전까지 몰아가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상황을 뒤집어보면, 소설 속 누군가는 반드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어떤 한 범죄에 실패한 이후, 희생양을 찾아낼 거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를 사로잡았어요. 문제는 너무나 빤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이 위기를 벗어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연쇄살인’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순간 발을 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박사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얻을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 근거로 몇몇 설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일단 ‘파킨슨병’이라는 설정이 그렇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치병을 앓게 된 그가,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수사를 택했을 가능성 말이죠. 몇몇 대목에서 주인공의 질병이 자존심을 깎아 먹긴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범인과 심리 싸움에 몰두하면서도, 자신의 자괴감을 그다지 실감 나게 그리지 않아 보입니다. 아내와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이런저런 갈등은 너무나 사소해 보일 정도로 조 올로클린은 너무나 원만한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절정부에서 이어지는 위기는 그의 ‘객기’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났어요. 네가 결정만 했으면 괜찮았잖아! 물론 그의 선택 없이는 소설 자체가 성립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그의 마음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어야 한다고 봅니다. 주인공에게 화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독서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말씀드린 대목에서 책장을 정말 빠르게 넘기긴 했지만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제게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쓰다 만듯한’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리 사놓은 후속작 『내 것이었던 소녀』는 이런 감정 소모 없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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