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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매튜 코브
  • 29,700원 (10%1,650)
  • 2021-09-30
  • : 1,565

처음 뇌과학에 흥미가 생겼던 건, 이 과학이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몇 권을 읽었을 땐 이제 곧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결국 뇌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자신감. 그 후에도 몇 권을 더 읽었다. 그리고 나는 꼭대기에 다다랐다. 그게 더닝 크루거 곡선 속 ‘우매함의 꼭대기’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우매함의 골짜기 정도인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보니 사실 내가 아니라 이 학문 자체가 그 골짜기에 서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저자 스스로 “여러 세부 분과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수면 연구, 비시지각, 호르몬, 정서, 뇌 발달 및 유전자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을 깊게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데(p.284), 다른 과학에서는 드문 광경이었으리라(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미래 파트에선 에누리 없이 “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제 교착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는데(p.499), 이 말이 꼭 ‘우리는 골짜기에 빠졌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뇌를 알면 인간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했으니,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딱히 보기 좋았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일단 겸손해질 수 있었고, 뇌과학의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수확이 여기에 그쳤다면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그저 그런 책으로 남았겠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오늘 서평에선 그걸 정리해보려고 한다.

 

 

 

인공지능과 가소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단 점이다. 인공지능이 여러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지능(인간 지능)을 이렇게나 많이 모르는 와중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만큼’ 발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간의 뇌는 단순 연산 기계를 넘어 감각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인공지능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고, 기술 발전을 감안하더라도 그 감각을 완벽하게 이식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신경가소성이 있다. 나는 자연지능의 신경가소성이 인공지능 개발자와 신경과학 연구자들에게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뇌를 미궁으로 끌고 가는 견인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자의 입장에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뇌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 최근 인공신경망으로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또한 동물과 다른 종류의 인지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물 뇌의 메커니즘과 다르다고 말한다.

 

미스터리를 더하는 트릭처럼 가소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연구자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우리 뇌가 유전의 유산을 물려받았더라도, 그로 인한 기능적 제약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든 최근의 사회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것이 바로 가소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가소성은 “높은 고도로 날면서 동시에 기존에 제작된 모든 부품들을 기내에서 새로 생산한 성분들로 교체하는 비행기와 같다”고 한다(p.344). 이런 뇌에서 법칙을 찾는 일이, 나에게는 마치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만물 이론처럼 느껴진다. 스티븐 호킹이 찾다가 끝내 포기했던 그 이론 말이다.

 

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까지 부족한 마당에 ‘일반지능’(AGI)의 탄생을 장담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물론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 때문에 일자리 위협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넘어 일반지능의 탄생과 인간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게 뭐랄까, 저 허풍쟁이들에게 잡히지 않아도 될 멱살을 내어주는 모습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에 관하여

 

인간 본성 같은 건 없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어떤 본성도 (앞서 인용한 것처럼) 환경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신경가소성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뉴런 사이에 연결이 뛰어나서 빠른 학습이 가능할 테고, 누군가는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서 누가 봐도 ‘상남자’ 같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예전에 읽은 『나의 뇌를 찾아서』에서 말하길 “상호의존성이야말로 두뇌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한다. 기질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이다.

 

굳이 본성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는 본성 타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이들이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각자 도생은 자연 법칙”이라 여기며 지금의 아수라장을 정당화하는 꼴이 몹시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제는 내 인생책이 되어버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셀 수 없이 강조한다. “다양성이 표준이다.” 배럿 또한 뇌의 신경망 배선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배럿의 책은 감정의 형성을 따져보는 책이지만, 우리 생각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무게를 따져보면, 나는 배럿의 저 선언이 우리 본성에 대한 설명으로 읽힌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다른 본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과학의 방식으로는 우리 뇌, 나아가 인간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만약 환경에 따라 신경망의 배선이 변한다면, 환경에 대한 공부 없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에 관한 연구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크릭은 “그들(철학자들)의 물음에는 귀를 기울이되, 그 답에는 귀 기울일 것 없다”(p.482)고 말했지만, 글쎄, 환경이 본성을 좌우할 정도로 큰 압력을 발생시킨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두 학자 집단이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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