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전자, 정우현
책판다 2026/05/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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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유전자
- 정우현
- 19,800원 (10%↓
1,100) - 2025-09-15
: 2,026
읽는 내내 ‘좋은 독서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독서란 ‘호기심 있는 분야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정의해 왔는데, 『나쁜 유전자』를 읽으면서는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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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유익한 정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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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뿌리 깊은 상식, 그러니까 ‘공부 머리 같은 능력은 타고난다(유전된다)’는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나의 상식이었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반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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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결국 유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령 책에서는 동성애 여부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태아 시절 산모가 분비한 호르몬 같은 환경 요소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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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 치밀하고 탄탄한 논증을 (사실 조금은 힘겹게..) 따라갔더니, 어느새 내 머릿속엔 ‘유전이 전부인 게 더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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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엔 끝내 ‘너무나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편견이 똬리를 틀었던 곳에 새로운 상식이 뿌리를 내린 셈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연 ‘좋은 독서’였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찾던 ‘유익한 정보’라는 게 사실은 ‘내 입맛에 맞는 정보’는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으니, 더더욱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까지 좋은 독서 체험을 안겨주신 저자 선생님(@romanc_grey)께 감사 인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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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새폴스키의 『행동』을 보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정보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행동』을 먼저 읽은 것이 『나쁜 유전자』의 독서에 깊이를 더해준 것 같다. 벽돌책에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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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다고 전적으로 ‘환경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꼭 밝혀두어야겠다. ‘그래서 얘 결론이 대체 뭐야?’ 싶으신 분들은 아래 인용한 『행동』의 서문 일부를 참고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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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에, 특히 생물학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점에 따른 중요한 사실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생물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공격성, 경쟁, 협동, 감정이입 등등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를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논할 때 생물학을 끌어들이는 것이 부적절할뿐더러 이념적으로 수상쩍다고 여기는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못지 않게 중요한 점으로, 둘째, 오직 생물학에만 의존하더라도 똑같은 곤경에 처한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사회과학은 언젠가 ‘진짜’ 과학에 흡수될 운명이라고 믿는 일군의 분자생물학 근본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이른바 ‘심리학적’ 혹은 ‘문화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
➕3️⃣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니 못 쓴 이야기가 너무 많이 생각나서 브런치에 다시 한번 긴 서평을 써볼 예정. 서평을 두 번 써도 좋을 책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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