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 어느 날,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감옥살이를 끝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화자이자 딸, 고아리가 훌쩍 자란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 본 남자처럼 낯설었”고(226), “아버지와 나와의 거리가 아득해졌다는 걸”(226) 깨달았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는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할아버지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고, 조카 또한 희망하던 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경력이 자신의 앞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깨달은 딸은 마음에 아버지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을 뿐이다.
그렇게 딸은 아버지의 세계에 무심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치산의 굴레가 무거웠”던 만큼, 굴레를 벗어던질 상상조차 못했을 터였다. 아버지의 배경 때문에 결혼식 하루 전날 혼사가 깨졌을 때도, 결혼이 깨진 덕분에 방 한칸을 마련했다며 “빨치산 부모 덕을 본 적도 있다”고 읊조리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체념을 엿보았다. 굴레를 벗어난 삶을 더는 꿈꾸지 않겠다는 체념이었다.


딸은 장례식을 찾은 조문객 덕분에 아버지가 남긴 세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하면 제 논의 모내기를 제쳐두고 수습에 나섰고,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자퇴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 “미국을 이긴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란 위로를 건네며 담배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베트남 전에서 장애를 얻어 공산당을 증오하는 참전 용사와도 술잔을 나눴다. 수감 생활 이후에도 사회주의자로 남았던 그는 사실, 이념의 경계 너머를 바라보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사람이었다. 딸이 모르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그 대화가 (이 서평처럼) 마냥 진지했다면 쉽사리 화해하기 어려웠을 터. 투철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뜻밖에도 “삶의 방식이 유머”(7)였고, 그는 딸 모르게 유머와 진지함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가끔은 어이 없고, 때때로 폭소를 자아내며, 이따금 감동을 주는 아버지의 세계와 대화를 마친 딸은 그제야 자신이 체념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딸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225) 그제야 딸은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231)
화해와 함께 마무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이곳에서 어떤 이념은 가져보았던 경험만으로 낙인이 되어버린다.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은 4년에 그쳤지만,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딸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워서 아버지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남한 사회는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252). 그러니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부녀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념을 짓누르는 역사 이야기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그랬듯 누군가를 낙인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무엇을 없애야겠다는 강박이 도리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유를 짓누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남긴 채 소설은 홀연히 독자의 곁을 떠나버렸다.
수도꼭지라도 튼 듯 쏟아지는 헤픈 눈물이 어쩐지 미덥지 않기도 하였으나 나는 또다시 방관자가 되기로 했다. 황사장 덕분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잠시 놓여나기도 했거니와 어쩌면 진정으로 위로받는 사람은 황사장이 아니라 어머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P24
나중에야 알았다. 그에게 동생이 하나뿐이었다는 걸, 일찍 어머니를 잃어 그가 업어 키운 아들 같은 동생이었다는 걸, 그 동생이 아버지 바로 곁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자기 몫까지 잘 살라는 동생의 유언을 그에게 전해준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는 걸.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 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아버지도 그랬다. - P28
함박눈 내리던 겨울날이 떠올랐다. 오빠의 마음속에도 그날이 사무치게 남아 있을 터였다. 그날을 마음에 품은 채로 오빠와 나는 멀어지면서 살아온 것이다. 빨갱이의 딸인 나는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빨갱이의 딸인 나보다 빨갱이의 조카인 오빠가 견뎌야 했을 인생이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자기 인생을 막아선 게 아버지의 죄도 아니고 작은아버지의 죄라니! - P81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하고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사사건건 아버지를 원망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홉살 작은아버지는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 그 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랑이었던 아홉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 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 P129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헌다고. 애들은 천날만날 놀리기만 했는디……"
엄마가 베트남 출신인 모양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미 제국주의 운운, 아버지다웠다.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담배를 피우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이가 겪어왔을 세월을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알았을 테고 아버지 방식대로 위로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버지식의 위로였다. 그 위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잘 먹혔다. - P141
어머니의 옛 시동생 가족들이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어쩐지 처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저들에게 내 아버지는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형수를 빼앗아간 사람만은 아닐 터였다. 형의 친구이고 동지였으며, 운명이 조금만 달랐다면 형과 친구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건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비극적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의 비극이 어떤 지점을 비틀어,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총출동한 흔하디흔한 자리일 뿐이다. - P169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아버지의 시신을 보자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네살 때의 아버지는 나에게 나와 같은 존재였다. 일심동체. 아버지의 알몸을 본 섬진강에서 나는 이미 아버지와 분리되었다. 그러니까 내게서 아버지를 빼앗아간 것은 이데올로기나 국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다. 아버지와 다름을 깨닫고 아버지를 닮고자 서서 오줌을 눌 만큼 아버지는 나의 전부였다. 그 아버지를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빼앗아간 것이다. - P201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 P225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231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 P252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 두들겠다고?"
아무튼 아버지는 제 허물도 제 입으로 까는 데 선수다. 그것도 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 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