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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판다의 서재
  • 넛지
  • 리처드 H. 탈러 외
  • 16,200원 (10%900)
  • 2018-11-23
  • : 32,837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해요.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과 손해를 완벽하게 계산한 다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존재라는 거예요. 언뜻 그럴듯해 보여요. 손해는 누구나 싫어하니까요. 작은 손해도 못 견디는 저 같은 소심이를 보면 언뜻 맞는 말 같아요.


그런데 문득 궁금해져요. 이득과 손해를 완벽하게 계산하는 게 가능할까? 이런 예를 들어볼게요. 누군가가 암에 걸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가정해봐요. 만약 진짜로 걸린다면, 그 사람은 열심히 저축을 해놔야 해요. 이 과정에서 많은 걸 포기해야 해요. 멋들어진 자동차, 텔레비전, 해외여행 등등. 이렇게 열심히 돈을 모아놨는데 암에 안 걸렸다면? 반대로 내일이면 인생 끝날 것처럼 탕진잼을 즐기고 있는 사이 암이 찾아왔다면? ‘메디컬 푸어’가 되는 거죠. 이걸 완벽하게 예측하고 대비한다? 그럴 수 있었다면 보험회사는 다 망했겠죠?


사람이 똑똑하긴 하죠. “여러 해 동안 못 본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고 모국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층 사이에 있는 일련의 계단들을 넘어지지 않고 뛰어 내려갈 수도” 있어요(39p).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 해도 엄청난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저런 예측 해내기 어려워요(사실 훈련해도 완벽하진 않은 것 같아요).

 

‘넛지’는 주류 경제학의 인간관을 반박하는 책이에요. 인간은 이성보다는 누구에게나 있는 다양한 편향에 따라 움직이고, 그래서 실수도 겁나 많이 하는 존재라고 해요. 단순히 반박만 하지 않아요. 인간이 오류를 저지르는 패턴을 관찰하고, 그걸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자고 주장해요. 자유경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시점에서, 너무나도 시의적절한 이론적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한번 간추려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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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사고 시스템은 두 개로 분류된다고 해요.


자동 시스템(시스템1): 신속하고 직관적이며, 혹은 직관적이라고 느껴지며, 주로 ‘사고’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을 수반하지 않음.


숙고 시스템(시스템2): 숙고 시스템은 보다 신중하고 의식적인 시스템으로, 우리는 ‘411 곱하기 37은 얼마인가?’ 등의 문제를 풀 때 활용.


--> 얼마 전에 읽다 만 (그런데 엄청 유명한) ‘생각에 관한 생각’에도 등장하는 분류 체계예요. 동시에 재밌게 읽었던 #해빗 의 ‘합리적 자아’와 ‘비의식적 자아’, #잠못드는뇌과학 의 ‘생각하는 뇌’, ‘반사용 뇌’와 같은 개념 같아요.


자동 시스템은 잘만 활용하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어요. ‘해빗’에 따르면, 긍정적인 행동을 습관화하면 우리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해요. 문제는 ‘숙고’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튀어나오는 자동 시스템이에요. 대개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요. 그런데 재밌게도 그런 오류에도 일정한 패턴들이 있다고 해요. 대략 다섯 가지 정도예요.


어림 감정: 대부분 사람들은 바쁘고 복잡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사소한(?) 사안들, 즉 ‘박나래의 나이’, ‘서울에서 전주까지의 거리’, ‘강원도 평창군의 인구’ 등을 추측할 때 어림 감정을 사용해요. ‘나보다 어릴 것 같아’, ‘목포보다는 가깝잖아’, ‘원주보다는 적겠지’ 등등 나름의 근거를 대면서요.


비현실적 낙관주의: 인간은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있어요. 수업시간에 자기 성적을 예측하라고 하면 50%가 자신을 상위 20%에 들 것으로 예상한대요(ㅋㅋㅋ). 90%의 운전자가 운전 실력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해요(비웃기게도 제 얘기네요). 이건 우리가 안고 있는 리스크(교통사고, 암 발병 등)를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돼요.


손실 기피: 만약 도박을 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잃을 수 있는 손실의 두 배 이상을 이익으로 거둘 수 있을 때 도박에 나서요. 이건 현재 갖고 있는 걸 고수하려는 타성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현상유지 편향: 사람들은 손실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보여요. 수업 시 지정좌석제가 아닌데도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든지 등등이에요. 심지어 변화에 따른 이익이 클 때도 이 편향 때문에 이익을 포기할 때가 많대요(카드 하나만 바꾸면 통신료 6천원이 할인되지만 바꾸지 않는 제가 빠진 편향 맞네요).


프레이밍: 그 유명한 ‘프레임’ 이야기 맞아요.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100명 중 10명이 5년 내에 죽는다’고 얘기하면, 대개 수술을 거부한다고 해요. 반대로 ‘100명 중 90명이 산다’고 얘기하면 반응이 다르다고 해요. 알려주는 정보가 정확히 똑같은데도요. 심지어 의사들도 앞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술을 거부하고, 뒤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술을 시도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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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 편향에 가득 찬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어요.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예요. 이건 책 서두에 소개되는 급식 담당자의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어요.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해서 가장 이로운 쪽으로 음식을 배열하되(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채소를 놓는 식으로), 최종 선택권은 학생들에게 주는 거예요. 배열 순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게 돼요. 하지만 몸에 나쁘지만 맛있는 음식을 빼앗기지는 않아요.


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넛지’(Nudge)가 돼요. 사전에 따르면 ‘이끌다’, ‘살짝 찌르다’, ‘자극’이라는 뜻이래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해요.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편향에 빠져서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많죠. 이건 개인에게도 손실이지만, 사회적인 손실로 이어지기도 해요. 저축을 하지 않는다든지, 충분치 않은 정보만 갖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다든지, 대출 서류가 너무 복잡해서 앞뒤 안 보고 사인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추심이 들어온다든지. 이걸 ‘넛지’로 방지하지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에요.


이 책에선 저축을 늘리는 법을 비롯해 손해 보지 않는 연금 상품에 가입하게 하는 법 같은 경제적 제도뿐 아니라 장기기증, 환경 보호 같은 사회적 제도에 ‘넛지’를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뭐가 좋고 나쁘다고 설명하는 ‘캠페인’보다 ‘넛지’를 이용할 때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요(가령 별다른 의사표시가 없으면 저축액을 임금상승률과 연동해 자동으로 늘린다든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을 장기기증자로 간주하되 기증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미리 신청을 받는다든지 등등). 선택할 기회를 주되(자유주의), 기본 옵션을 지정하는 거죠(개입주의).


저는 이 책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들어요. 애초에 인간은 이래저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남은 실낱같은 합리성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크고 복잡해요. 자유주의 아무리 해도 전 제 인생 최선의 선택 못 할 것 같아요. 반대로 누군가 선택지를 제 손에 쥐여준다면? 엄마한테 듣는 잔소리도 짜증 나는데 내 선택지들을 누가 다 골라준다면 아마도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제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저한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까요. 내가 선택하되, 적절한 선택지를 쉽게 고를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가 하나 남아요. 그 선택지는 누가 만드나요? 아마도 정치가와 전문가 관료집단일 거예요. 그렇다면 정치가와 전문가 관료집단에 그냥 믿고 맡기면 모든 게 끝날까요? 아닐 것 같아요. 전문가 집단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돼요. 그들 또한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에요. 공익적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데, 꽤 자주 사익을 위해 움직여요. 책에도 등장하는 예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어요. 믿고 집 산 사람들, 채권 산 사람들 다 망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예들 너무나 많지만 그냥 넘어갈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좋은 ‘넛지’에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겠죠. 신뢰가 있더라도 실제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면 개인이든 사회든 망하겠죠. 좋은 ‘넛지’에 대해 주권자와 정치인, 전문가 관료집단이 합의해가야 이 책이 ‘넛지’를 주장한 취지도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아요.


p.s1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나라는 그게 좀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네요. (찡긋)


p.s.2

인스타그램에도 넛지 하나를 심어놨는데, 넛지가 잘 될지 모르겠어요….


p.s3

‘생각의 관한 생각’ 읽기 프로젝트로 먼저 꺼내 들었는데, ‘생각에 관한 생각’을 먼저 읽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넛지’가 도리어 응용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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