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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대한 의혹
  • 목숨을 팝니다
  •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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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5
  • : 284






 

 

 

 

 

 

 

   작가 이름을 모르고 읽었더라면 이 불가사의한 작품이 미시마 유키오의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미시마 유키오? 미심쩍어하는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미시마 유키오>가 맞다. 『가면의 고백』 『금각사』 같은 무겁고 내향적인 성향의 작품들과 다르게 오락성이 다분한 이 소설은 1968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에 걸쳐 <플레이보이>지에 연재되었는데, 당시 미시마는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이키델릭 모험소설>이라고 소개했다. 미시마 유키오가 약 빨고 쓴 것 같은 가볍고 황당한 이 소설의 분위기에 절묘한 정의라고 생각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환멸이다.


   떨어진 신문 위에 바퀴벌레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뻗는 동시에 그 매끈매끈한 마호가니색 벌레가 후다다닥 도망쳐 신문 활자 사이로 숨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신문을 주워 올렸다. 아까부터 읽던 페이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주운 페이지를 훑었다. 그러자 읽으려고 하는 글자가 전부 바퀴벌레로 변했다. 읽으려고 하는 글자마다 번들거리는 검붉은 등을 보이며 도망쳐 버린다. ‘아아, 세상이 이렇게 생겼구나.’ 깨달음은 갑작스러웠다. 깨닫고 나니 그저 죽고만 싶어졌다. (12쪽)


   미시마 유키오가 생을 마감하기 이 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의 저변에는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 <야마다 하니오>는 그 자체로 허무주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를 연상케도 하는 하니오는 비장감이나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의미 없는 자살에 실패한 후 수동적인 자살 즉, 목숨 파는 일을 궁리해낸다. <자살하기는 귀찮고, 게다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작된 이 <사이키델릭한 모험>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하니오는 무의미에서 시작해, 그 무의미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절대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해서는 안 되었다.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바람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무의미에 직면한 인간은 일개 감상주의자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들이다. 선반을 열었더니 거기에 이미 두텁게 쌓인 먼지와 함께 의미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람은 굳이 무의미를 탐구하고 무의미를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208~209쪽)


   목숨을 판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든 인물들 역시 범상치 않다. 하니오는 <줄에 매달려 걷는 인형처럼> <책임 없는 행위의 가뿐함>에 해방감을 느끼며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의 삶에 무겁하게 뛰어든다. 뜻하지 않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이른바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도 잠시 경험하지만 끝내 안주하지는 못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하니오라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를 통해 <신문 활자도 다 바퀴벌레로 변하는 세상>의 획일성과 속물성에 대한 염증과 회의를 드러낸다. 의미의 무의미 속에서 무의미의 의미를 갈망하는 하니오의 고독한 몸부림에서 미시마의 짧은 생애가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자였다. 별 돋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찰서 앞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경찰을 상대하는 술집의 빨간 초롱이 두세 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니오의 가슴에 밤이 들러붙었다. 밤이 그의 얼굴에 납죽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경찰서 현관 앞의 돌계단 두세 개를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하니오는 바지 주머니에서 꺾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울고 싶었다. 목구멍이 울먹울먹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이 부옇게 번져 여러 개가 하나로 보였다. (290~291쪽)


   미시마 유키오가 충격적이고 극적인 죽음을 연출하며 세상을 떠난 지 거의 반세기가 흘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순적이고 의외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일례로 그는 생전에 보디빌딩으로 몸을 단련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고 한편으론 의미심장하다. 미시마 유키오가 멋진 몸을 만드는 데 골몰한 이유는 연애나 건강 때문이 아니라 <죽은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조 때문이었다고. 알면 알수록 미시마는 소설 속 인물 하니오와 얼마나 닮아 있나. 건전하고 실용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연출하고자 했던 그의 미문美文은 <괴작>이라고 불리는 이 소설 곳곳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야 나. 미시마라고. 전작들과는 다른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는 독자를 향해 가만가만 속삭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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