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죄 없는 짐승들을 죽여? 언젠가 술자리에서 사냥을 즐기는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냥. 취미지. 돌아온 대답은 그랬다. 그래. 세상에는 재미 삼아 새들을 쏴 죽이는 사람들이 있고 영문을 모른 채 죽어버리는 생명들이 있다. 예고 없이 날아온 총알을 맞고 별똥처럼 떨어지는 죽은 새들을 떠올리면 무슨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통증이 느껴지는데, 그들의 죽음이 결코 우리의 죽음, 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아서이다. 언젠가 나도 저들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리라는 인식과 아직까지는 죽음이라는 총알이 날아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드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보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인식이 인간 존재 핵심에 존재하는 고뇌이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끊임없는 불멸 추구의 길로 이끈다. 그 탐색은 인간 역사의 과정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330쪽)
<공포 관리 이론 terror management theory>을 기반으로 인류 문명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하는 이 책은 인간 행동의 핵심을 죽음의 공포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 반응으로 설명한다. 공포 관리 이론에 따르면, 사냥꾼 친구가 게임하듯 짐승들을 쏴 죽이는 것은 죽음 불안을 해결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다. 다른 동물들을 하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제한다는 우월감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운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살생을 십악의 하나로 여기는 불교에서라면 사냥은 천벌 받을 짓이다. 기독교도들에게는 부처님을 섬기는 불교야말로 지옥불에 던져버려야 할 망령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문화적 세계관과 신념 체계 속에서 삶의 유한성에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초월하려는 갈망은 서로를 향한 폭력을 부채질한다. 내가 속한 문화적 사물 체계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공포를 억누르지만, 전혀 다른 신념 체계로 이 공포에 대처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들의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불가피하게 우리들이 아는 진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의미를 담고 있고 인간은 가치 있고 영원한 존재라는 불안정한 관점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들만의 진실을 믿어야만 한다. (206쪽)
<공포 관리 이론>의 기초가 된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의 학설과 그를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연구 성과들이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죽음 공포에 대한 인간 행동과 그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책에 의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은 예술과 문화, 종교, 철학, 전쟁, 섹스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모욕을 받을 때 인간은 자존감을 잃고 의미 있는 세계에 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미약한 생물로 전락한다. 소말리 족 속담에는 “모욕은 죽음보다 나쁘다. 전시 상황에서 모욕적인 언사는 총알보다 더 큰 상처를 준다”라는 말이 있다. 총알은 육체를 죽이지만 모욕은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공포를 억누르고 있던 중요한 감각을 깬다. 인류 역사상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보복 전쟁은 수없이 많았다. (218쪽)
<죽음 공포 이론>은 생경하거나 참신한 주장은 아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죽음을 부정하고 초월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다른 동물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죽음만은 부정하는 <슬픈 불멸주의자>가 인간이니까. 책에서는 죽음 공포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중심 역할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얻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대응책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물론 <슬픈 불멸주의자>들에게는 썩 명쾌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