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노마드 대표 윤동희 씨가 출판계 선배이자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이병률 시인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여러 계절을 거치면서 나눈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바뀐 계절 얘기, 평소 주량이나 술버릇, 좋아하는 시간대나 애용하는 화장품 같은 일상적이고 사적인 주제부터 시와 문학을 포함한 예술관, SNS 문화나 세월호 사건 같은 묵직한 주제에 대해서도 이병률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이 세상에 음악이 필요해요. 이 세상에 예술이 필요해요. 정신없이 사느라 내가 사람인지를 모르고 사는 일련의 문제들과 충돌을 겪어요. 하루 세끼 온전하게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더라도 그 사이, 그 간극에는 시가 놓여야 하고, 음악이 흘러야 하고, 그림이 걸려 있어야 하거든요. ‘와락’ 하는 것들이요. 그것들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하고 한 번쯤 의문을 던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없다면 몸이 불편하고 삶이 두려워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시가, 음악이, 미술이 우리를 동정하고 있다고도 보고요, 우리의 약한 부분을 메꿔준다고도 믿어요. (108쪽)
시처럼 음악처럼 바람처럼 섬세하면서도 자유로운 리듬이 느껴지는 이병률의 어법에는 사람을 옭매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그 리듬을 만들어내고 또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질문자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질문자와 대답자 사이에서 관심의 무게와 신뢰의 공기가 어우러져 <적정한 온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랄까. 이병률만의 표정, 음색, 호흡, 침묵의 결까지도 오롯이 전해져서 바로 옆에서 대화를 훔쳐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밀착감,이라기보다는 적정한 온도와 좋은 공기 속에 합류했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 대화를 따라가는 동안 그 느낌이 아련한 위로를 준다.
내가 어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면...... 나를 좀더 의심하려고요. 하고 싶은 게 분명 있는데 도무지 하지 않는 나를요. 하물며 공원 같은 곳에서도 벌렁 눕고 싶은데 사람들이 볼까봐 눕지 못하는 나를, 친구들하고 소풍 가자고 하고 잔뜩 음식 만들고 싶은데 가자고도 하질 않고, 음식 만드는 일은 오버하는 것 같아 하지 않는 나를 의심하려고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 일인지를 반성해야죠. 그리고 죽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사랑했으면 해요. 아직은 무엇인지, 누군지도 모를, 그 모두이며 수많은 것들을요. (169쪽)
이병률은 여행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항상 떠나기 위해 준비가 된 사람 말이다. 새롭고 낯선 미지의 것들이 두려워 한자리만 맴도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병률은 좋은 자극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반드시 장소의 이동만이 여행은 아닐 것이다. 삶의 결정적인 변화, 마음을 뒤흔드는 일들, 한 마음이 다른 마음에게로 건너가는 일도 멋진 여행이겠지.
나는 불완전체이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 완성 가까이로 가려는 노력을 해요. 나는 빈 상태이고 불완전한 상태라는 걸 인정하지요. 계속 부딪히고 계속 가야죠. 새가 멀리 날 수 있는 건 가방이 없어서이기도 하잖아요. (68쪽)
책을 덮고,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기분이다. 한 사람 안으로 힘껏 멀리 뛰기 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울컥 사람이 그립고 삶이 그리워졌다. 어떤 것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결국 <‘나’라는 장애> 때문에 <가 닿을 수 없는 것들>, 자꾸만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도 계속 부딪히고 계속 가야겠다고, 나는 가방이 없으니까 멀리 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천천히, 멀리 돌아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