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손상 환자들을 진료하고 연구하면서 뇌과학 발달에 기여한 신경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구성이 먼저 눈에 띈다. 정교한 뇌 해부도와 본문을 부연하는 사진 자료들과 노트, 이야기체 서술 방식이 책의 내용을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각 장의 첫머리마다 그림과 문자를 조합한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기이하고 예측 불가능한 증상을 보이는 뇌 손상 환자들의 갖가지 사례와 뇌과학적 통찰을 얻기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뇌과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뇌의 구조와 각 부위의 명칭, 뇌의 작동 기제 같은 뇌과학적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가끔 ‘무엇’ 갈래의 손상이 선택적으로 일어나 모든 사물이 아니라 특정 범주의 사물들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범주 인식 장애자 중 많은 사람들은 입술 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헤르페스herpes는 ‘살금살금 기어가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바이러스는 대개 별 해를 끼치지 않지만 때로는 악당으로 변해 후각 신경을 따라 올라가 뇌로 침투해 관자엽을 공격한다. 이렇게 되면, 신경세포들은 공포에 질려 신호를 발사하기 시작한다. (153쪽)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속성 감각을 잃고 단 몇 분의 기억력만 남은 사람, 세상의 절반만 인식하는 사람, 거울 속의 자신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사람, 자기가 이미 죽었다고 확신하는 사람 등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뇌에 결함이 생긴 사람들의 기묘하고 놀라운 이야기는 물질적인 뇌가 어떻게 비물질적인 정신 현상(마음)을 일으키는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포레족이 갈수록 까칠한 반응을 보임에 따라 현장에서 연구하는 의사들은 포레족에게 귀한 물건을 주고 조직과 맞바꾸었다. 이 때문에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사들은 쿠루병 말기 환자가 사는 마을 외곽에 머물며 야영을 했다. 막대를 몇 개 세우고 그 위에 방수포를 둘러쳐 임시변통으로 부검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곡소리가 울리면, 희생자 가족이 사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가 협상을 시도했다. (...)한 남자는 백인들이 자신의 ‘고기’(아내의 뇌)를 가져가겠다면, 그 대가로 다른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224쪽)
미지의 영역에 묻혀 있던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를 밝혀낸 신경학자들의 노고와 열의, 그리고 인간 뇌(정신)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시선도 읽을 수 있다. 묘지에서 훔친 시체의 머리를 해부한 베살리우스, 이례적으로 가족의 머리를 열고 직접 뇌를 절개한 펜필드 외에도 뇌과학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는 용감하고 기상천외한 신경학자들의 활약상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심한 기억상실증 환자도 자신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기억상실증 환자는 자신의 성격을 묘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성격 특성을 내비친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관대한지 성급한지 혹은 그밖의 성격이 어떤지 안다. 또한, 다른 기억에 의지해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449쪽)
유려한 문장과 극적인 구성으로 뇌과학의 역사를 풀어내는 이 책은 인간 마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담고 있는 한편 뇌의 사소한 결함으로도 허물어질 수 있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책의 서두에서 샘 킨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밝히고 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질문 <뇌가 끝나고 마음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인가> 에 답하기 위해서였다고. 뇌과학 역사의 시초가 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펼친 이유도 다르지 않다. 뇌가 끝나도 마음은 지속될까. 내가 나라는 의식, 나를 나이게 만드는 자아의 핵심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어디 있을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이런 질문들은 무얼 말해 주나. 몸과 마음, 물질과 비물질성 사이에서 인간은 한결같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는 것이다. 이 책의 재료를 제공했고 이 책을 쓰게 했고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으며 이 책이 결국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단순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