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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대한 의혹
  •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슈테판 클라인
  • 13,320원 (10%740)
  • 2016-07-11
  • : 332

 

 

 

 

 

 


 

     잠든 이의 얼굴에 붉은색 낙서를 하면 꿈꾸러 나간 넋이 집을 못 찾고 영영 떠돌게 된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었다. 무시무시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주위 아이들이 붉은색 공포증에 걸린 것처럼 붉은색을 기피하면서 호들갑을 떨 때, 나는 밤마다 꿈꾸러 나간다는, 넋이라고도 영혼이라고도 정신이라고도 불리는 나의 분신에 대해 생각했다. 막연하고 질서 없는 공상 속에서 유리처럼 투명한 육체를 입은 또 하나의 나는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해 꿈길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죽지 않았고 깨어 있을 때는 볼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도 물고기로 변신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는 그곳은 놀랍고 멋진 세계였다. 기분 좋은 꿈을 꿀 적이면 꿈속에서 영영 못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주 가끔이고, 대개가 무섭거나 슬프지 않으면 부끄럽고 허황된 내용이었다. 나쁜 꿈을 자주 꾸었고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캄캄한 천장을 쳐다보던 날이 많았다. 다시 돌아왔네.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꿈속의 이야기들을 오래 곱씹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고 솔직해지는 순간이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다. 로마의 신 야누스가 두 개의 얼굴을 가졌듯이, 우리는 수면 중에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미래를 내다본다. 기억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배경 속에서 미래의 과제를 숙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227쪽) 



    뇌파 분석을 통해 꿈의 내용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 있다. 해몽의 시대가 가고 해독의 시대가 온 것이다. 얼굴에 붉은색 낙서를 하면 영혼이 길을 잃는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아이들이 요즘 시대에도 있을까. 꿈꾸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인의 삶에서 1<꿈은 그냥 밤에 켜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싸구려 영화> 같은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하지만 텔레비전은 누구에 의해, 왜 켜지는 것일까. 싸구려 영화 같은 꿈속 이야기들은 과연 무의미한 우연에 불과한 걸까. 이런 문제에 대해 궁금증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소개하는 책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꿈은 깨어 있는 삶의 왜곡된 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꿈은 뇌가 감각의 연속적인 점화에서 벗어나자마자 어떤 표상을 산출하는지 보여준다. 꿈은 가능성을 가지고 하는 놀이다. 꿈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구성한 현실 속을 돌아다닌다. 깨어난 뒤에 외부 세계에서 그 현실을 추구한다. 우리가 오래전에 꿈속에서 본 듯한 장소에 가고 또 그런 장면이 자꾸 반복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97쪽)

 

     꿈이라는 주제에 다각적이고 세부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우선 능란하고 명쾌한 화법이 돋보인다.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정신분석학, 뇌과학, 심리학은 물론 철학, 예술, 신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꿈에 관한 최근의 연구 성과들을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흔히 가위눌림이라 부르는 수면마비를 경험한 개인적 체험부터 헬렌 켈러, 카프카, 폴 매카트니 등 유명인들의 꿈 체험에 얽힌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일화들이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연구 보고들을 부연하고 있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카프카가 보기에 꿈 세계와 깨어 있는 세계 사이에는 확고한 경계가 전혀 없었다. 두 세계 각각이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적이고, 우리는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었다. 한번은 친구 막스 브로트의 집을 방문한 카프카가 거실에서 졸고 있는 막스의 아버지를 건드렸다. 카프카는 소파 앞으로 살며시 지나가면서 반쯤 깨어난 친구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저를 하나의 꿈으로 간주해주십시오.” (301쪽)

 

    오랜 세월 베일에 싸여 있던 꿈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있는 이 책에 의하면 꿈은 <그냥 밤에 켜진 텔레비전> 이상의 목적과 의미가 있는 중요한 정신 작용이다. 꿈을 통해 우리는 기억과 감정을 복기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즉 뇌는 꿈이라는 현상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정리하고 미래를 연습하면서 앎을 획득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의 뇌는 포화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책에 의하면 꿈은 예술적 창의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폴 매카트니의 꿈속에서 흘러나온 멜로디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신의 글쓰기를 두고 <나의 꿈 같은 내면적 삶의 표현>이라고 밝힌 카프카의 작품들 역시 꿈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읽기 어렵다.이들 외에도 책에는 꿈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들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악몽을 꾸는 환자는 우선 꿈속에서 체험하는 바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 공포의 이미지들과 대면해야 한다. 그 목적은 악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견딜 만한 이미지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공포 영화에 새로운 긍정적 변화를 가미해야 한다. 환자의 꿈속 자아는 공포에 휩싸여 얼어붙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공황에 빠져 달아나는 대신에 추격자를 향해 몸을 돌려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에 환자는 낮에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상상한다. 이 치료법을 ‘상상 예행연습 치료Imagery Rehearsal Therapy'라고 한다. (255쪽)

 

    학문적 성과나 일화들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꿈을 활용할 수 있는 솔깃한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꿈으로부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효과적인 방법, 반복되는 악몽에서 벗어나는 법, 자각몽을 마음대로 연출하는 방법들을 놀랍도록 명쾌하게 집어 주고 있다. 오랜 통설을 깨는 이 책에 의하면 꿈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혹은 무의미하고 터무니없는 현상이 아니다. 꿈꾸는 동안 우리의 뇌는 낮에 배운 것을 복습하고 감정을 처리하면서 성격이 발달하고, 뇌가 변화하면서 능력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꿈은 얼마나 미래지향적인가. 꿈은 내가 잠든 사이 저편 세계로 건너간 나 자신으로부터 송신된 암호문 같은 것이다.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매혹적인 방식으로 일러주는 꿈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영혼은 집을 못 찾고 영영 떠돌게 되지 않을까.

 

 

 

 

 


 



  • 꿈은 그냥 밤에 켜진 텔레비전 같은 거지. 우연히 보게 되는 싸구려 영화들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잖아. 
    이상우 『프리즘』(문학동네)
    ㅡ 「비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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