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가볍다
『알제리 혁명 5년』 (프란츠 파농 씀 홍지화 옮김)
‘아무리 불합리하게 느껴질지라도 죽은 듯이 있어라. 저들은 너무 강해서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이 한숨 섞인 충고 속에는 미안함과 울분과 체념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선 안 된다. 뭔가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서투르다. 모두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반발심을 가슴에 품은 채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체제 속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욱하는 마음이 조금 남아있을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무기력함과 피로감이 사회에 만연하다. 이것은 혁명 전 알제리의 모습이다.
알제리는 제국주의 프랑스의 초기 식민지 중의 하나였으며 프랑스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최후의 식민지였다. 알제리인은 식민지배자에게 미개하고 어리석다는 멸시와 조롱을 받고 모국어를 잃은 채 13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런 알제리에 혁명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에 프란츠 파농은 정신과의사로 알제리에 입국했다. 파농은 혁명기간 동안 알제리 민중들과 깊숙이 접촉했고 『알제리 혁명 5년』은 그러한 알제리의 평범한 인민들의 삶에 대해 써낸 책이다. 작가는 알제리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혁명이 인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알제리 인민은 프랑스인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주체성을 가질 수 없었고 프랑스인의 도구로 여겨졌다. 130년간 강요된 수동성에 그들은 지쳐있었다. 불씨를 피워내도 그 불을 살려낼 땔감이 없는 것처럼 소진되어 보였던 알제리 민중들은 혁명을 받아들이고 나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들이 혁명을 접한 곳은 적과 대치하고 있는 전쟁터가 아니다. 히잡, 라디오, 프랑스어, 가족, 의료 등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 작가는 혁명의 숨소리를 포착했다. 파농은 이에 대한 서사를 통해 혁명이 얼마나 사소한 것이며 인민의 삶과 가까운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또한 살펴볼 만한 부분은 ‘혁명전사’라는 말의 쓰임이다. 평범한 이웃집 청년이든 수줍음이 많은 여동생이든 무기력해하던 남편이든 모두 혁명전사가 되어 혁명을 움직인다. 특별할 것 없는 한 명의 알제리인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혁명이 가벼운 것이었음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평범한 알제리인이 자신의 혁명에 대해 담담하게 써내려간 수기인 부록은 그 가벼움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이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은 이 책의 접근장벽을 높이는 요인 중에 하나이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같은 문단을 두 번, 세 번 읽다보면 지쳐버려서 책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또 알제리란 국명조차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책의 앞이나 뒤에 알제리전쟁에 관한 간단한 설명이나 그 과정에 대한 연표를 덧붙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알제리 전쟁에 관해 배경지식이 없을 경우 이따금 이야기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어리둥절할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대에서 40대까지의 나이 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국민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 덜 풍요롭지만 여유가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다가올 것 같은 미래로는 지금의 사회기조가 이어져 높은 마천루와 불야성으로 상징되는 첨단자본주의사회가 도래할 것 같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변화 가능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체제에 순응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혁명이란 말은 너무 거대하고 실제 삶과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허황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알제리도 그러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견고한 체제가 불만이 공론화 되는 순간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혁명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순간부터 혁명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