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권할까?
명상에 관심이 많은사람
춤에 관심있는사람
자유로운 살고싶은 사람
저자는 무용가이자 명상 수행자이다.
이 책은 24년 전에 출판되었고 당시에 베스트셀러 였다고 한다.
절판된 책을 이번에 다시 개정판을 내었다.
나는 24년 전에 어린 아이였기에 물론 이 책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명상에 관심이 많아
오쇼 라즈니쉬를 관한 책을 읽다 보면서
한국 최초의 라즈니쉬 제자가 '무용가 홍신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오쇼 라즈니쉬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낄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라즈니쉬의 제자가 한국에 있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더구다나 70년대는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지 않던 시기였는데
그 시기에 인도에 가서 그의 제자가 된 한국인이 있었다는것이 신기해
내 머리속에 각인 되었다.
나는 인도를 2008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뿌네에 있는 오쇼의 아쉬람을 둘러보았는데
오쇼 없는 명상센터는
웬지 주인없는 허전한 집 같았다.
오쇼 생전에 만나봤으면 좋았겠지만 그가 열심히 활동할 때에
난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니사가다타 마하라지,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가 된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대리만족을 느꼈다.
라즈니쉬는 큰 숨을 쉬었다.
"됐다. 너는 무용을 그만두어선 안 된다.
나는 네 팔과 다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네 동작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네가 얼마나 춤 속에서
스스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가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너는 타고난 무용가다.
결코 무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
계속하라.
너에겐 춤이 곧 구도의 길이 될 것이다.
너는 그 길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가야 한다."
85쪽
에고를 잊고 무언가에 빠져든다면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몰입이란 에고를 잊고 완전히 빠져드는것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것에 대한 몰입을 통해
에고를 잊고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잘못은 우리가 어디에 포함된 부분이 아니라
완전히 분리된 독립된 실체라고 자신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오해 때문에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을 혼동하고 급기야는 유한한 것에 모든 의미를 실어 버린다. 수행이란 결국 유한자와 무한자를 혼동하지 않도록 훈련을 쌓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가? 무엇이 죽는가? 육신이 죽는다.
육신이 죽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스스로를 독립된 한 실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나의 에고다.
그 에고는 어디에 있는가? 이 육신 속에 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면 육신이 소멸되면서 에고도 함께 소멸한다.
죽는 것은 결국 에고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에고다.
에고가 자신의 소멸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147쪽
사람이 태어나면서
배움을 시작하고 에고를 형성한다.
인간사회 속에서 살면서 에고를 사용하고
에고의 작용을 강화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에고를 초월해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사람이 된다.
에고를 자신과 동일하게 여긴다면
고통이 많고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에고를 속임수라 여기고
에고가 하는 짓을 지켜보면
에고의 트릭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보자.
떠오른 생각을 자신이라 여기지 말고
지켜보자.
그 생각에 끌려가지말고 지켜보자.
마하라지...
그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인도에 머무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히말라야의 어느 동굴 속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일생을 한 칸 다락방에서 살았지만 무엇 하나 부러워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깨달은 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통해 진리를, 이 우주의 신비를 엿볼 수 있었다.
나도 그와 같이 이름도, 명예도, 제자도, 가진 것도 없이 살다가 가고 싶다.
324쪽
결국 죽을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하늘에 있는 구름처럼
나도 잠시 인간세에 머물렀다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인생은 짧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일은 해보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행복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하였고 또 구도의 길을 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미래로 미루고
현재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생은 짧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일을 당장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