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방북사건으로 5년간 복역한 뒤 '98년 출소했던 이듬해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치리(일명 한티골)에 단층 양옥(연산재)을 지어 살면서 <오래된 정원>(창비)과 <손님>(창비) 썼다.
또한 작가는 말년에 조용히 마음에 드는 글을 쓰며 살 생각으로 2023년 2월 군산에 내려갔는데, 가 보니 미군 부대에 수용될 위기에 놓인 하제마을 팽나무와 새만금 갯벌을 지키는 싸움이 문정현• 규현 형제 신부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았다. 600년 된 그 팽나무를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하나의 순환 과정으로 보는 불교의 인연설을 생각하게 하는 <할매>(창비)이다.
아무르강 하구에서 부화한 마도요 새끼 첫째가 황해 연안 조선의 갯벌까지 여섯날 을 날아 도착한 다음 배를 채운게 그 칠게 들이었고, 어느덧 열살을 넘긴 첫째가 아무르강과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을 오가는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 내리곤 하던 수라 갯벌에서 태풍과 폭우에 스러진 뒤 그 주검을 수습한 것은 생합들이었으며, 사람들은 다시 그 생합을 호미로 캐내어 반찬으로 삼는다.
<긴 잠에서 깨다>(푸른숲) 1976년, 일본 홋카이도의 승려 도노히라는 어느 절에서 위패를 발견했다. "황병만. 쇼와 18년(1943년) 9월10일." 이를 계기로 그는 과거 슈마리나이 지역 우류댐 공사에 강제동원된 수많은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매장됐다는 걸 알았다. 숲속 유골들을 꾸준히 수습해 온 그는, 1989년 이곳을 찾은 한국 인류학자 정병호(1955~2024)와 인연을 맺었다. 식민주의 폭력에 희생된 이름 없는 유골들이 긴 잠에서 깨어 세상에 나올 길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