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살아내고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작가는 89세 '보'라는 화자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 아침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자각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재택 요양보호사에게 숨기기도 한다. 천식약, 심장약을 복용해야 하고 아내는 치매로 요양원에 가면서 그는 아들 '한스'의 지원을 받으면서 애완견 개와 함께 생활중이다.
개 산책조차도 힘겨워지면서 아들 한스와 개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노인 보의 심리적 상황들이 전해진다. 보가 지금 개를 이렇게 집요하게 포기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한 애완견의 죽음을 아버지에 의해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지금 애완견과의 헤어짐을 거부하는 이유는 명확해진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함께 하였음을 보여준다.
늙어감과 질병은 깊은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아내에게는 치매, 투레에게도 의사의 마지막 선고, 화자인 보까지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치매로 남편과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와 어머니를 찾아간 날의 이야기, 투레와의 수많은 추억과 연락이 되지 않는 직장 동료였던 투레를 걱정한 마음과 장례식에서 본 낯선 사내 인물의 존재까지도 들려준다.
아버지를 노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리감이 상당한 존재로 이야기하는 화자의 심정을 짐작하게 된다. 더불어 아들 한스가 개를 데려간다는 것에 분노하는 화자의 심리적 상황과 아들의 진심을 감지하는 보의 이야기도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57세 아들 한스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서서히 준비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보가 자신의 아버지를 노인이라고 부르는 인물의 죽음을 기억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죽음도 다가왔음을 받아들인다. 손이 뻣뻣해지고 어지럼증을 경험하고 기억도 서서히 사라지면서 메모된 것들을 보고서야 조각같은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들이 일기처럼 전개된다.
배움이 많지 않았지만 자신은 잘 살아왔다고 자부심을 가진 노인은 한스가 스스로 배움을 선택하면서 아버지와 정치적 논쟁을 하였던 시간도 떠올린다. 57세 한스는 더 이상 정치적 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지만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삶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돈을 벌어서 자유로워졌느냐는 질문에 독자들에게도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그가 지금은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139
한스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항상 바쁘게 돌아다닌다. 124
그들은 항상 바빠요.
뭘 할 때마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거든요. 123
자유라는 질문은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 부여잡으면서 무엇이 자유인지 진중하게 삶을 둘러보게 한 순간이다. 교회라는 종교가 손에 피를 묻혀 있다는 투레의 설명도 의미심장하게 전해진다. 후쿠나가 다케히코 소설 『풀꽃』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웃랜더> 넷플릭스 시리즈에도 무수히 많은 전쟁과 죽음에 종교는 그들과 함께 하지만 허무한 죽음과 억울함이 존재하면서 종교가 어떤 존재였는지 이 소설에서도 매만지는 문장으로 남는다.
교회 / 그들이 손에는 피가 묻어 있어. 389
47년 동안 제재소에서 일을 하였지만 한 번도 번아웃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아들 직장에서는 스트레스,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의 호소에 의아해한다. 재택 요양보호사들의 돌봄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소설이라 인상적이다. 요양사 말 한마디에 노인이 안도하면서 애완견의 향기를 맡으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한 번도 지켜본 적이 없기에 소설을 통해 많이 배웠던 시간이다.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배려, 변기 위에 수건을 깔아주는 배려가 얼마나 큰 것인지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소설이다.
제재소에서 일. 47년.
단 한 번도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42
돈을 벌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그가 지금은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P139
한스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항상 바쁘게 돌아다닌다.- P124
그들은 항상 바빠요. 뭘 할 때마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거든요.- P123
교회 / 그들이 손에는 피가 묻어 있어. - P389
제재소에서 일. 47년. 단 한 번도 번아웃을 경험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