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문들이 가득한 1권의 이야기가 2권에서 서서히 드러나면서 작가의 소설을 깊게 조우한 장편소설이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진실 앞에서 세계가 구축한 거짓된 역사와 제도, 답습하는 관행에 진중한 질문을 던지게 한 작품이다. 유능한 외교관이면서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충실했던 친구가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사라지는데 영국 정보국 요원이었던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적 혼돈 앞에서 자신의 이상과 소신이 흔들리는 인물들의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영국, 체코, 티토주의, 조지 오웰, 스위스, 미국 등이 상징하는 의미가 예사롭지가 않다. 넷플릭스 시리즈 <아웃랜드>를 통해서 영국의 민낯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조지 오웰의 에세이와 소설을 통해서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소설에 등장한 나라들은 찌르는 아픔이자 슬픔으로 점철된다. 밀란 쿤데라 작가가 체코를 향한 사랑과 체코의 역사를 유럽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에세이 내용까지 떠올리게 된다.
"소유의 허망함에 대한 경고" (439쪽)가 소설 1에서 언급된다. 영국이 소유한 나라들이 집어삼키기까지 어떤 폭력이 자행되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역사도 아프게 떠올리면서 독립된 나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거듭 확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하였을 지난한 날들과 체코어를 향한 애정까지도 또렷하게 부각된다. "아빠는 항상 자유를 이야기해요. 자유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가 직접 쟁취해야 한다고." (386쪽) 소설 1의 문장이 예사롭지가 않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을 떠올리면서 모두가 공포를 느끼면서 자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엄청난 불안을 느낀 역사까지 떠올리는 문장이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동조하는 문화와 트렌드 앞에서도 역사와 자유를 먼저 떠올리는 습관이 어느새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반드시 머릿속에 세상을 집어넣고 다녀야 돼. " (211쪽) 소설 1에서 말하듯이 자본의 힘에 좌우되는 소모되는 기계의 부품이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 소설의 예리한 문장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톰이 즐거운 얼굴로 ... 고함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근심이 가슴 밖으로 사러지는 것을 느꼈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385쪽) 소설 1에서 언덕 위에서 고함을 친 톰의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을 함께 공감하게 된다. 김지연 소설 <무덤을 보살피다>을 읽고 나서 그녀의 인터뷰 내용과 소설은 그녀의 언덕 꼭대기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자유로워졌다.(359쪽)라고 말하는 자유가 얼마나 거대한 의미인지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수수께끼처럼 남겨진 메모들이 향한 인물을 따라가면서 그의 선택들을 살펴보았던 소설이다. 지주 같은 사람이 현대사회에서는 누구인지,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지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고문 도구를 머뭇거림없이 사용하고 싶어하는 지주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원주민과 다름없는 그들이 누구인지, 가든파티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누구인지 상기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옛날에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인 지주 같은 사람. 일주일에 하루는 시내에서 일하고, 그 외에는 사냥을 하고, 원주민들에게 구슬을 선물로 주고, 초범들에게 쓸 고문 도구를 가져오고 싶어 하고, 그 사람 아내는 가든 파티를 열어. - P132
너를 지금의 너로 만든 모든 쓰레기들, 그러니까 특권, 속물근성, 위선, 교회, 학교, 아버지들, 계급 제도, 역사 속 거짓말, 시골의 하급 귀족들, 대기업의 하급 귀족들, 그리고 그 결과로 벌어진 탐욕의 전쟁, 이 모든 걸 우리가 영원히 쓸어 버리고 있다는 것. 너를 위해서. 우리는 매그너스 경처럼 슬픈 친구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사회를 만들고 있으니까.
- P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