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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집이다. 새롭게 옷을 입은 매만진 소설집이라 오랜 시간 응시하면서 작가가 길게 응시한 소설의 이야기로 초대받는다. 6편의 소설들 중에서 『여수의 사랑』과 『어둠의 사육제』를 읽을수록 긴 응시와 삶과 죽음, 고독과 질문들을 무수히 마주 보게 된다.
『어둠의 사육제』라는 소설에서 어둠을 응시하고 찾아낸 작가의 시선 끝을 여러 번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암에 걸려서 항암제 부작용으로 빠져버린 머리카락과 교통사고로 횡단보도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어버린 명환의 아내가 쏟아낸 하혈에서도 어둠을 직시한다. 같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혼자만 살아남았지만 혼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명환의 존재와 집에 가득했을 어둠들을 이야기한다.
명환의 방에서부터 헤엄쳐 온 어둠...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 모를 여인의 하혈 같았다. 125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에 속살이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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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사회, 합의금의 의미는 명환에게는 무가치한 것임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아파트의 가격, 화려한 차, 부족함 없는 이모와 이모부의 직업과 삶에서 따뜻한 온기와 사랑은 찾기가 어려운 서울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움켜쥔 것들은 어떤 가치를 환산하고 있었는지 베란다에서 한기와 싸워도 이겨내지 못하고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고독과 외로움을 작가는 무심하지 않게 외면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함보다는 악함이 우세한 사회에서 뻔뻔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모순까지도 보여준다. 자식이 많은 집에서 대학교육은 포기하라는 부모의 말에 스스로 희망과 꿈을 가지면서 서울로 상경해서 일을 하면서 모았던 전세금을 고향 언니에게 사기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이모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후의 이야기들에서도 고단함과 외로움, 치열한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간암과 어머니마저 몇 달 뒤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 인숙언니의 고단한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과 갑자기 사라진 전세금 사기 사건도 이야기된다.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인숙의 말과 화장하는 모습의 반복적인 의미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인숙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피곤해. 피곤해 죽겠어. 입에 달고 사는 말 _ 인숙언니 노동자 78
전세금은 ... 내가 키워온 희망이었다. 내 대학이었고, 장래였고, 젊음의 담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전부였다.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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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마저도 박탈당하고 노동을 하지만 피로가 가득한 인숙을 보면서 노동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 기업의 무자비한 횡포까지도 떠올리게 한다. 노동자의 노동과 피로를 우습게 여기고 쓰러지고 죽어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현대사회의 폭력들을 인숙과 화자가 살아가는 삶과 달동네의 자취방에서도 찾게 된다.
도시 노동자의 경력이 쌓여가지만 그들은 점차적으로 희망을 가지지 않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대중교통비 상승, 생활비 물가 상승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큰 비중이 되고 이들은 희망마저도 포기하게 되는데 인숙을 통해서, 화자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양손에는 책들과 이부자리를 들고 어깨에는 작은 살림들을 메고 나온 화자는 어디서 살게 될까. 무거운 짐을 양손과 어깨에 짊어진 서울의 수많은 노동자와 직장인들이 투영된다. 노동의 쓰임이 무용하지 않기를, 노동자의 땀과 희망이 무색해지지 않기를 응원할수록 그 응원과 바램이라는 희망이 퇴색되어버릴까 봐 조바심을 감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희망을 가졌던 화자의 꿈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희망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 하루 5 페이지씩 읽는 그녀가 잊히지 않을 소설이다.
불빛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오?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 나 여기 숨 쉬고 있어. 나도 여기서 밥 먹고 잠자며 살아가고 있어. - P115
피곤해. 피곤해 죽겠어. 입에 달고 사는 말- P78
전세금은 ... 내가 키워온 희망이었다. 내 대학이었고, 장래였고, 젊음의 담보였다. 그것은 내 인생 전부였다.- P86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에 속살이 베이며 피 흘리고 있었다. - P115
명환의 방에서부터 헤엄쳐 온 어둠... 항암제 부작용으로 뽑혀 나간 인숙언니의 치렁치렁한 머리채 같았으며, 뱃속에 명환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는 얼굴 모를 여인의 하혈 같았다.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