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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 여름과 루비
  • 박연준
  • 13,050원 (10%720)
  • 2022-07-15
  • : 4,431



시인의 소설이라 눈여겨 보고만 있다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냉큼 펼친 소설이다. 고요한 포옹, 듣는 사람,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책들을 통해서 시인을 알게 되었다. 장편소설은 기대 이상의 넘치는 감동을 선사하면서 수많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받게 한 작품이다.

아이를 버리는 여자들이 언급된다. 갑자기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미옥이 있다. 비난도 쏟아지지만 그만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이해도 듣는 여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받을 수 있을까. 그 여자들이 아이를 버린 이유와 어떤 결혼생활을 하였는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실패한 결혼과 두 아이를 키운 미옥이 아이를 버린 사연은 직접적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남겨진, 버려진 아이들이 받아낼 비난의 말과 시선을 작가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추기 시작한다. "어떤 여자들은 애를 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언덕은 얼마나 높고 가파를 것인가." (222쪽)

엄마가 없는 여름이라는 아이가 화자이다. 고모가 키워준 사연과 어느 날 새엄마가 생겨서 고모 집에서 나와서 아빠와 새엄마와 살게 되면서 여름의 성장 이야기도 전해진다. 처음부터 없었던 엄마이지만 여름을 키워준 고모의 양육방식과 할머니에 대한 마음, 새엄마와 대립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전해진다. 어른들이 고집스럽게 지키고 자랑스럽게 살아낸 삶의 방식들의 모순을 여름이라는 아이는 뒤편으로 밀어 넣지 않고 기억하면서 하나씩 자신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차분하게 살펴보기 시작하는 소설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이 또렷하게 이야기되면서 할머니의 시선과 의자가 지닌 의미도 되짚는다. 지금은 지워진 기억이라 할머니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애처가라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질질 끌고 다닌 그날의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숨기고 덮어버린 진짜 이야기들이 어린 손녀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 소설은 언급한다.

허풍과 자랑을 반복하였던 여자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고모의 삶, 할머니가 덮어놓은 진짜 결혼생활의 민낯, 미옥이라는 루비 엄마가 갑자기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일까지도 소설은 놓치지 않는다. 거짓말을 반복하는 루비의 거짓된 삶에서 진짜를 보게 되었던 여름은 비밀스러운 친구가 된다. 두 소녀가 나눈 우정도 있지만 비열하게 숨어버리고 외면하는 여름의 모습을 루비가 모르지 않는다. 루비 가족이 반지하 집에서 엄마와 루비가 살고, 아빠와 남동생이 각자 다른 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여름은 알게 된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조숙한 루비의 모습과 뒤라스 소설 『연인』을 읽는 루비의 모습도 기억나는 장면이다. 루비가 여름을 찾아와서 연락하겠다고 하였는데 루비에게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남기게 된다. 루비가 믿었던 것들이 퇴색되어 루비가 여름을 찾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만 할 뿐이다.



여름의 아빠가 학교 선생님에게 죽도록 맞았다는 것을 고모에게서 듣는다. 아빠는 여름에게도 선생님에게서 맞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여름은 아빠가 가르친 유일한 가르침이라 잊지 않고 거짓말로도 아빠에게 약속을 지켰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죽도록 때릴 일이 있을 이유가 있는지부터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공적인 가르침이 아닌 감정적인 분출을 학생들에게 하였던 폭력이 아니었는지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회가 정당하게 부여받은 폭력과 권력이 얼마나 정당하였는지는 지금도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린 여름은 학교에서 당하는 폭력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지 거듭 둘러보게 된다. 예측하지 못한 계엄령에 많은 국민과 세계인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사건이 있다. 일어날 수 없는 폭력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것에 우려를 감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름이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알아버린 엄마의 부재, 엄마의 부재를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아빠, 새엄마와 대립하는 여름에게 갑자기 태어난 동생이 새엄마가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대립하는 감정들을 지루할 틈이 없도록 흥미롭게 전개하는 시인의 멋진 소설이다.

어른이 무심하게 말하는 말들을 어린 여름은 놓치지 않고 곱씹는다. 기억하고 기억하였을 여름의 수많은 유년 시절을 차곡히 만나게 되는 소설이다. 고모 집에서 생활하면서 터득한 필사하는 습관이 여름에게 글쓰기 실력이 월등하도록 이끈 밑바탕이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고모와 고모부 결혼생활도 실패작이지만 고모는 부러움을 사는 위선적인 기혼자임을 이야기한다. 고모의 결혼이 실패였다는 것, 고모가 자랑한 것들은 여자와 전통, 조선과 식민지, 가해자의 문제로 언급하는 문장도 기억나는 멋진 명문장으로 남는다.

죽음도 차곡히 여름에게는 기억된다. 여름의 고모할머니의 자살 사건, 여름의 아빠 죽음, 할머니 집에서 키운 개들의 죽음까지도 이야기되면서 어두운 구멍과 같은 죽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이다. 늙어서 죽는 죽음을 기다리지 못한 것과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도 예리한 사실적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가르침을 남기기까지 한다. 자기 이야기만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소음과 같은 정보 시대에 이제는 등을 돌리게 된다. 내 이야기만 들어라고 시끄럽게 언론을 장악한 형태에 소등하게 되면서 어떤 분별력이 필요한지도 거듭 확인하게 될 뿐이다. 의도와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치우친 언론의 소음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모할머니와 다르지가 않다. 고모할머니가 돌아간 뒤 2일 뒤 자살한 이유는 무엇인지 언급되지 않지만 여백은 고모할머니의 언행에서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짓과 허세로 얼룩진 삶은 진짜가 아닌 가짜이다. 가짜는 언젠가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죽음까지도 쉽게 지우지 않고 불러놓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는 소설의 인물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누군가는 남의 애 키우는 어려움을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남의 엄마에게 키워지는 모멸감을 끊임없이 회귀해야 하는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 어리고 기댈 곳이 없어서 삼킨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름을 통해서 보게 된다. 어리지만 어린 것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과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인생의 수많은 변곡점에서 죽음과 대화를 나누었는지 여름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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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는 일, 그건 미치도록 어렵다. 89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늙어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동급이 아닐까요. 168- P168
깨끗해져야 하는 게 정말 우리였을까?- P81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는 일, 그건 미치도록 어렵다.- P89
‘맞으면 아플까‘라는 생각보다 ‘맞는 게 옳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고민의 여파- P172
‘남의 애 키우기의 어려움‘. 수군거리는 소리. 피부로 흡입해야 하는 이야기들. ‘남의 엄마에게 키워지는 모멸감‘- P209
어떤 여자들은 애를 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언덕은 얼마나 높고 가파를 것인가-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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