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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 비눗방울 퐁
  • 이유리
  • 13,500원 (10%750)
  • 2024-11-08
  • : 9,445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을 하나씩 읽을수록 작가가 펼쳐놓는 작품들에 푹 빠져들게 된다. 『보험가 야구르트』와 『담금주의 맛』이라는 2편의 단편소설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랑들을 한다. 자기가 사랑한 사람을 믿고 살아가지만 한순간 자신이 사랑한 것들이 잿빛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무엇을 사랑했던 것인지 자기의문을 쏟아내면서 무엇에 분노하고 실망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는 것도 뒤늦게 자각하는 인물이 있다. 『담금주의 맛』이라는 소설의 화자가 그러하다.

변함없을 것 같았던 일상 속에서 남편의 휴대폰에 있는 의문의 대화 내용들을 보게 된다. 남편의 손가락에 투명한 매니큐어 흔적이 발단이 되면서 발견한 남편의 불륜 증거들을 확인하면서 그녀의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자기 앞에서 불륜녀의 의견을 전화로 듣고 트렁크에 남편이 자기 옷들을 챙겨 넣는 장면을 목격한 그녀는 자기가 사랑한 남편과 결혼을 의문스럽게 밀쳐내기 시작한다. 이혼 후 그녀는 자신을 삶을 온전하게 찾은 것도 아닌 상황이다. 그러한 그녀에게 담금주를 담는 키트가 배달되면서 그녀는 담금주를 담는 이유, 담금주를 음미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인지도 가름하게 된다. 그녀가 담은 담금주를 처음으로 맛보는 그날이 소설에 등장한다.

담금주를 담았을 때와 담금주를 먹는 날 그녀는 얼마나 변화되어 있었을지 보여준다. 담금주를 담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사랑과 결혼생활, 이혼하게 된 이유들과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회사 동료였다는 12살이나 어렸던 여자 직원에 대한 기억들을 처음으로 차근차근 떠올리게 된다. 남편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어떻게 호칭하면서 불렸을지도 짐작하게 된다. 거부감 없이 살았던 집에 불륜녀와 함께 초대받아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과 불륜녀를 보면서 그녀가 느낀 것들도 등장한다. 결혼은 끝났지만 그녀의 인생은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리하여야 했을 것들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담금주를 담으면서 그녀는 하나씩 기억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밀봉된 담금주처럼 경험은 흐릿하게 남아있겠지만 예전처럼 선명하지도 않을 그때의 결혼생활과 슬픔과 상처는 숙성될 것이다.

그녀가 담금주를 마셔도 되는 날이 왔을 때 그녀는 예전의 그때의 자신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 당시의 감정과 분노, 슬픔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현재 생활과 감정들만이 지금 자신을 통제하고 일상을 가득하게 채워 넣고 있음을 담금주의 맛을 느끼면서 확인한다. 삶도 그러하다.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흐물흐물해진 자신이 언젠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내고 있을 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을,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서 멀리 보내버린 흐릿한 일로 남을 거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당하기 힘든 사랑, 이별, 상처, 슬픔도 담금주를 담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때의 사랑과 인연이 전부였겠지만 다른 삶도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들려주는 작품이다.

늙고 가난한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소설 『보험가 야구르트』가 있다. 마른이 넘은 아줌마, 야구르트 아줌마와 보험 아줌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커플이다. 이 커플이 가진 돈은 오천만 원 정도가 전부이다. 처음 첫 직장을 찾았을 때와 지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가진 돈, 함께 먹는 음식들에서도 큰 변화가 없는 현재이다. 그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른 것과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들은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과 방법도 찾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커플 중의 헤원은 첫 직장이 중견 기업의 로비에서 하이힐을 신고 일하다가 족저근막염으로 염증 제거 수술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사회가 원했던 만큼만 쓰임을 다했고 혜원은 쓰임을 다하고 수술까지 하면서도 스스로 직장을 그만둔 젊은 노동자였다. 화자도 자궁근종이 파열되어 응급수술을 받게 되면서 피주머니와 오줌주머니를 찬 기억을 떠올린다. 연이어 헤원은 신장 결석 수술도 받았다는 것도 들려준다. 가난과 질병은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해 주지 않는다. 마흔이 넘은 이 아줌마 커플이 또 아프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도 충분히 예상하게 된다.

피로를 팔아서 번 돈,

피로한 삶을 사는 것,

언젠가는 그것조차도 하지 못할 때가 찾아올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와 돈의 가치를 차분히 떠올리지만 이들 커플의 미래는 희망은 보이지 않으며 엉망진창인 오늘의 삶을 연속하면서 이 커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영화와 소설은 가상이지만 이들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치열한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가난이 왜 대물림되는지 이 커플이 직장 생활에서 당했던 부당한 대우들과 질병에 노출되면서 사라진 돈들과 현실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부족해지는도 보여준 소설이다. 이 커플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가족들에게 외면당하였다는 것도 언급된다. <윤희에게>영화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작품이다.


지금은 피로를 팔아 피로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그조차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내 노동의 가치는 조금씩 떨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누구도 돈과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노쇠하고 병들어 고칠 곳투성이인 몸뚱이를 어디서도 찾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P199
엉망진창인 오늘도 끝나면 내일이 된다.- P202
그토록 피로하여 번 돈으로 다만 피로한 삶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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