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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소년』, 『브로콜리 펀치』 등 소설로 유명한 이유리 작가의 8개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신간 소설집이다. 그중에서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소설이 인상깊게 자리잡는다. "성재가 떠났다. 내게는 텅 빈 집과 아픈 고양이,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이 남았다. 남은 사랑을 팔기로 한 것은 그래서이다." (81쪽) 설레는 사랑을 하고 기분 좋은 행복을 나누었던 사람이 떠난 후 남겨진 것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과 상실감을 오롯이 대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가 제안하는 감정전이 센터에서 감정 샘플을 추출하기로 약속한다. 친구 영인은 결혼한 친구인데 남편이 조건만남을 한 후 상처받은 감정들을 혼자의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어서 감정전이 센터를 이용해서 화자와 서로 감정을 전이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감정 샘플을 배양하고 특수 기체가 두 여자의 감정들을 치유하게 된다. 물론 부작용도 나타난다는 것도 언급되는 상황이지만 친구 영인은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행복해하고 기뻐하면서 남편과 회복된 관계를 즐거워한다. 하지만 화자는 갑자기 흐르는 눈물의 의미조차도 낯설기만 하다. 스스로의 의지로 떠난 이별을 회복하지 못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면서 감정전이의 부작용으로만 설명될 뿐이다.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거부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지만 눈물과 분노, 화라는 감정까지도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의 단계라는 것을 이 소설의 두 여자를 보면서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가상의 세계를 펼쳐놓을수록 우리가 온전하게 느끼고 슬퍼할 수 있어야 하는 시간과 날들이 왜 필요한지도 진지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뒤늦게서야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회피하지 않고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절실하다. 사랑하는 것도, 이별하고 헤어진 후에 어떤 감정들로 정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작품이다.
헤어지면 무조건 감정전이를 하는 남자 영욱도 등장한다. 변호사인 영욱은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진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적 소모도 남기지 않는 감정전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남자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감정들이 소모되는데 이러한 것들을 쉽게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 소설 속의 시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영욱과 친구 영욱 부부를 통해서 살펴보게 된다. 진짜 고뇌하는 영욱의 남편의 통화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가끔 들거든요... 지금 영인이의 생각이 온전히 영인이의 것이라 아니라는 게. 껍데기는 분명히 영인이인데 속 알맹이는 다른 누군가의 것을 대신 집어넣은 것 같아요." (127쪽)
진짜가 사라져 버린 것, 회피해 버린 것이 텅 빈 껍데기이라는 것을 이들은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에 지치고 달아나고 싶어질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도망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슬퍼하고 인정하며 떠나보내야 하는 감정들도 있다는 것, 눈물도 기꺼이 흘러도 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헤어지면 무조건 감정전이를 해요. 얼마나 좋아요? - P134
감정이라는 게 무슨 장기 이식하듯이 누구 것을 빼서 다른 누구에게 넣는다고 그게 진짜 자기 것이 될까요.-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