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삶
스콧 새비지 외 글.
2026년 9월 The April Bookclub
약 300여 쪽으로 구성된 책 한권을 읽으면서 몰입도는 마치 여러 책을 읽는 듯이 바뀐다. 처음 읽을 때는 너무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는다. 한 번에 다 읽지 않는 나 같은 경우, 읽다가 내려놓고 며칠이 지나 다시 책을 펼치면 영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페이지를 넘기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몰입하는 듯 하다가 책을 마친다.
종교 이야기가 30퍼센트 정도 차지한다. 간소한 삶을 살기 위해 전자제품, 문명은 버릴 지언정 종교는 꼭 끌어 안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절절하다. 고정관념, 짐도 내려놓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복음서의 뜻과 초기 교회의 본보기를 제대로 따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간소한 삶을 사는 이유가 종교 교리를 따르는 것 중 하나인가. 그럼 간소한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믿는 한 행위인가. 종교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의문 없이, 생각 없이, 그저 하는 행위자로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가. 문명을 받아들이지 말고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고 열 번을 토로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불일치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간소하게 사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 그래서 종교 이야기에는 두 눈을 감았다. 글쓴이들이 종교에만 눈을 떴다면, 누군가는 종교에만 눈을 감는 이도 있어야지.
------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기술의 이점을 말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그 시간에 무엇을 얻었는가?
혼자서 또는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 좀 더 고독하게 지낼수록 더 넓은 세상의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인 인간의 생각이란 외로운 시골길을 걸어가는 법이다. 아이들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낼 시간을 빼앗았다. 사람은 무리 지어있을 때 쥐떼처럼 행동하며 서로를 죽이려 든다. 권력이라는 대형전함을 멈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침몰하기 전까지는.
한 가족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변화가 생기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쏟아진 젤리 한 방울을 닦기 위해 바닥 전체를 문지르는 것과 같다. 표백제로 바닥 전체를 벗겨내기 전에 먼저 비누를 조금 묻혀 가볍게 문질러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라. 언제나 무엇이든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냥 좋은 일.
건강은 말 그대로 온전한 전체로 있는 상태이며 치유는 온전한 전체로 만드는 일. 현재의 의료산업은 에너지의 절반을 검사에 쏟아 붓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혹시 질병이 잠복해있거나 서서히 퍼지고 있진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약을 먹을지 말지 대단히 신중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한 번 약을 먹기 시작했다가 말려드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귀앓이 치료약을 하나 먹었다가 그 약으로 생긴 부작용들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두 개 먹게 되고, 결국 약을 끊고 나서는 귀앓이와 부작용이 모두 재발하는 상황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새로운 것에 무턱대고 환호하느라 고민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또는 깊이 있는 구조적 분석 따위를 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냥 기술을 흡수하고 일종의 기계 인간이 되어 더 큰 기계를 위해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비극이다. 그런 사람들은 군중의 맥박 속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려고 헛되이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도 대게 가장 저급한 취향에 맞춰 방송을 편성했다. 그에 따라 도덕적 기준도 급속히 격하되었다. 대다수 프로그램은 건강한 도덕적 풍토를 좀먹는 단순 오락물에 불과했다. 부모로서 우리가 텔레비전을 집에 들인다면 가장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을 양육할 우리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라디오를 끄고 침묵을 되찾았다. 정적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힘닿는 한 그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저항하고 도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당하는지를 잘 의식하는 것이다. 해로운 것들을 머리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세상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해야 한다.
나쁜 삶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는 것,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모으는 것, 적에게 복수하는 것, 그다지 인간답지 못한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런저런 것에 중독되는 것.
광고를 보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를 소유하는 일처럼 보인다. 기계와 이야기하고, 기계를 사들이고, 사용법을 익히고, 기계를 관리하고, 그 기계를 내다 버리고 새 기계를 사들이고 또 사들이는 일에 당신 인생의 몇 퍼샌트를 쓰고 있는가? 아마도 대단히 많은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비인간적인 공장에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며 곧 유행에 뒤떨이질 수명이 짧은 놀라운 기계들을 만드느라 땀 흘리는 수많은 사람의 삶.
오랫동안 기계와 이야기하며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필시 그러다 미쳐버릴 것이다. 지난 100년간 소비의 무아지경에 빠져 기계를 사들이느라 우리의 아이들과 가족, 언덕과 하늘과 물을 먹어 치웠으며, 학교 교육은 끊임없는 소비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당신이 어리고 무력했을 때 부모님이 당신을 돌본 것처럼,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계는 그런 책임 따위는 알지 못한다. 당당하게 인정하라. 당신의 부모와 조부모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이 살아온 삶을 가려야 한다. 그들이 빚은 흙에서 당신이 나왔으니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르는 무거운 대가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는 주체가 아니라 대리인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많은 학교 선생들도 다른 사람의 명령을 옮기는 대리인일 뿐이다. 자신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건 기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고 지켜라. 외부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마라. 당신의 가족이 최고인지 최악인지는 언론과 복지 관료들이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내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기꺼이 포기하는 삶. 무엇이 중요한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으로 쓴 글이니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삶으로 이해하고 응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