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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알쟁이
  •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제임스 우드
  • 15,300원 (10%850)
  • 2025-12-15
  • : 15,064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영 옮김

 

비행기 안에서 펼쳤다. 펼칠 때까지만 해도 집중을 못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리저리 읽어보아도 끝내 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있다. 어느 쪽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됐다.

 

[각각의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다. 이는 곧 모두가 죽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라는 질문. 이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던지는 질문이며

 

“그의 곁을 지키던 모든 사람들은 눈물과 탄식 속에서 그의 영혼을 놓아주었다. 내 말은 그가 죽었다는 뜻이다.” 이 언어의 빈약함을 보라. 서툴고 엉성해서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이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소설가인 나의 아내는 최근에 모친을 잃은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우리 인생사라는 건 참 이상하지. 아무 모양이 없다가(더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만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엔딩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온 궤적이 한눈에 보이니 말이야.

 

소설은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자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소설이나 이야기 속 인물들이 자주 죽기 때문이 아니라,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이 죽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대해 시작부터 끝까지 신적인 권능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물이 작가와 독자의 감시하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자기만의 자유로운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지를 펼치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거의 저항도 못 해보고 쓰러지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무심한은 죽음을 의자놀이처럼 들리게 한다.

 

이제 아이들은 훨씬 더 온건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살균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관찰한다는 것은 구출하고 구원하는 것이며 삶을 그 자신으로부터 구해낸다는 것이다.

부활이란 작고 세세한 것들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할인 매대 위로 올라갈 운명인 것 같았다.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질문이다.

 

‘이해’라고 부른 것에 의한 직관의 죽음이었다.

 

다른 인물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방식에는 은유가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울적한 단조의 변주에서 벗어나 밝은 C장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달콤한 불협화음은 환영받는 고통과도 같았다.

 

저 멀리 서 있는 하나의 형상에 불과한 그녀는 단지 머뭇거리다가 잠깐 들어온 관광객일지도 몰랐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무언가를 인식하기는 하지만 어떤 이해도, 진정한 연결 고리도 과거도 없다. 오랬동안 그곳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거리감만이 존재한다.

잠시 절망적인 결여로 느껴졌던 그 감정의 문을 닫아버린다.

 

충분히 부자연스럽고

 

허구가 아니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했던 걸까?]

 

다시 봐도 이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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