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산문
박준
[그간 괜찮다 괜찮다 생각해왔는데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아졌습니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인 삶이 유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는 일이 이상합니다. 마음에 저승 같은 불길이 일고, 그것을 손으로 비벼 끄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느새 말과 행동까지 뜨거워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살아오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내 마음 안쪽으로 돌처럼 마구 굴러오던 말들, 저는 이 돌에 자주 발이 걸렸습니다. 넘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습니다. 빛과 비와 바람만이 풀잎이나 꽃잎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낼 수 있지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어디에 살고 있느냐의 문제보다는 누구와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으로 어디가 되었든 좋은 이웃이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소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계절이 완연한 여름이 접어든다 싶으면 한 손에는 차가운 청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오이절임 같은 것을 들고 찾아드는 그때 정원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삶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언제 새로 이사한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다만 빈손으로 오셔야 합니다.
사랑은 이 세상에 나만큼 복잡한 사람이 그리고 나만큼 귀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무용해 보일 수 있어도 끝까지 무용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