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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김영
  • 11,700원 (10%650)
  • 2021-01-02
  • : 25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장 먼저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역사 책에서 처음 접한 천주교 신자들이 받은 박해를 기억한다. 철벽같은 신분제가 있던 시절에 천주를 믿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걸어야 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형제자매이고 천주를 믿어야 구원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을 믿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막기 위해 천주를 믿는 신도를 잡아들여 대역 죄인으로 다스렸다. 잡힌 그들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신분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처음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 처음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이승훈 세례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나라 허가 없이 국경을 넘나들고 국가에서 금한 천주교를 포교한 죄명으로 군문효수형의 선고를 받았다. 두 사람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역사적 지식일 뿐이지 그들이 겪은 고초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욱이 잘 알려지지 않은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라서 궁금증이 일었다.

그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떻게 신부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신부가 되기까지 겪었던 힘겨움들 그리고 신부가 된 뒤 이슬로 사라졌던 행적이 상세히 펼쳐진다. 책에 김대건 신부의 연보가 정리되어 있어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다시 보니 그의 삶이 또렷이 그려졌다.

책에서 인상적인 몇 가지만 정리해 보자면.

김대건 신부의 어릴 적 이름은 재복이었으나 앞으로 조선 교회를 크게 일으켜 세울 인물이 되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대건'으로 바꿨다. 프랑스 모방 신부의 눈에 띄어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첫 신학생이자 유학생이 되어 나라밖으로 신학 공부를 위해 떠나게 된다. 그들의 나이 17세, 16세였다. 한성을 떠나 청나라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한 걸음걸음으로 찾아 나선 마카오에서 라틴어 기초와 중등 교육 과정 시작으로 철학, 수학, 음악 등 정식 교육을 받았다. 김대건은 외국어 학습 능력이 뛰어나 라틴어로 성경 해독이 가능하고, 중국어와 프랑스어 회화도 가능했고, 포르투갈어도 익혔다고 한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천주를 향한 신념이 있는 그. 그의 눈빛은 늘 반짝였을 것 같다. 그들이 사제가 될 조건은 충분했으나 딱 한 가지 음정이 전혀 맞지 않는 깨진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을 위해 손풍금을 구하게 되는 일화에서 웃음이 번졌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일을 겪는 과정에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최양업 토마스와 김대건 안드레아의 슬픔이 컸다. 하나의 조선 신학생 별이 지고 두 별이 남은 것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조부, 아버지, 김대건까지 4대가 순교하였다니...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다는데 당진을 가게 된다면 한번 들러보고 싶다.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4대가 모두 한마음으로 순교한 일은 생각할수록 먹먹하다.



신학 공부를 마친 김대건은 7년 만에 조선에 어렵게 들아왔다. 아버지도 이미 순교하여 어머니와 동생이 힘들게 사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천주에게 성직자로 바치기로 한 일에 전념하기 위해 알리지 않았다.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는 바닷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곳에서 한국인 첫 사제가 되었다. 몇 개월 뒤 다신 조선으로 들어와 10년 만에 드디어 어머니를 만났다. 사제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곰배마실 은이공소에서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렸다. 여전히 신분제인 사회에서 신분을 떠나 천주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 되어 소박하게 올리는 미사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공식 미사가 되고 말았다.

김대건은 인천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고, 군문효수형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교우들에게 고별사를 썼다. '주께서는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목자를 주실 것이 틀림없으니, 그리 슬퍼하지 마시고 큰 사랑으로 천주 섬기기에 힘쓰십시오'라는 문구가 절절하다.



그리고 최양업 토마스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한성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1984년 교황 바오로 2세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성인으로 시성하여 성인품에 올랐다. 2021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가 '2021년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 유학시절을 보낸 마카오에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동네 성당 그리고 어느 성당을 지날 때마다 안드레아 신부가 생각날 것 같다.

(*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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