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고,
에세이 제외하고는 소설도 다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폴 오스터의 팬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만 놓고 보았을 때, 이런 거짓말은 없다.
[공중 곡예사]를 읽으면서 나는 내가 폴 오스터 소설의 팬임을 비로소 자인하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은 1994년 작으로 나는 그 뒤에 나온 소설들을 먼저 읽은 셈이다.
[부르클린 풍자극], [선셋 파크], [보이지 않는] 등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 세계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만큼 독특한 상황에서 전개되는데 [공중 공예사]도 마찬가지였다.
공중 부양하는 소년의 이야기라니.
예후디 사부, 이솝, 수 아주머니, 위더스푼 부인 등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연속 등장.
너무 흥미로워서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웠다.
조금이라도 지루해질 만하면 뻥뻥 터지는, 매우 개연성 있는 사건의 출현.
폴 오스터는 정녕 천재인가.
하지만 전체 분량 4분의 3 지점에서 사부가 죽은 뒤부터는 아무래도 이야기가 힘을 잃었고,
주인공의 매력도 점점 쇠락해갔다.
끝까지 읽어나갈 힘마저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결말부였다.
어쩌면 주인공보다 나는 예후디 사부를 더 좋아했던 모양이다.
사족을 달자면 역시 폴 오스터 소설의 번역은 황보석 씨가 진리다.
원문이 훌륭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황보석 씨의 소설은 어느 부분이 어색해서 역시 번역 소설의 한계구나 하는 지점이 거의 없다.
아주 자연스럽고, 등장인물들 특유의 어투와 개성이 정말 몹시 잘 살아 있다.
어쩌다 이걸 이렇게 늦게 읽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