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재밌어서 행복했다. 유머가 아주 콸콸 쏟아지는구나. 과학 지식에 기반한 상황 설명도 콸콸 쏟아지는데 10분의 1도 이해 못 한 듯한 찜찜한 기분은 애써 모른 척하기로 한다. 우주선 헤일메일호에 지구인 하나가 혼수상태에서 흡사 좀비처럼 깨어난다. 깨어난 순간부터 독자를 웃겨준다. 동료 둘은 죽어 있고 주인공은 자기 이름도 기억을 못하는데 이상하게 과학 지식은 푱푱 솟아난다. 우주선 밖은 태양계가 아니네? 소설은 주인공 그레이스의 현재와 서서히 기억해내는 과거, 즉 이름과 전 지구적 임무를 떠올리는 과정을 교차로 보여준다. 과거인즉, 태양의 열기가 식고 있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 생명체가 태양열을 흡수하고 있어서다. 지구에 빙하기가 오는 건 시간문제.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행성으로 가 해결법을 찾아내는 게 바로 주인공의 미션인데, 혼자서 로봇 도우미 팔들과 소설의 절반이 넘도록 떠드는데도 너무 웃기고 600여 쪽에 이르는 마지막까진 외계인과 조우해 소통하고 친구가 되고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아주 과학적이고 인류문화적이고 감동스럽게 그려냈다. 흑흑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이게 다 문과생에겐 너무 어려운 과학 지식 잔치가 벌어져서다! 그럼에도 어떻게 영화화가 안 되고 배기겠나 싶을 만큼 재밌으니 니가 이겼다 이 SF 놈아. 라이언 고슬링 파이팅. 아 또 이 프로젝트의 총사령관 스트라트 캐릭터는 알마나 매력적인지.
<책 속에서>*"자체 보행이 감지되었습니다." 컴퓨터가 말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혼수에서 깨어난 혼수투스 황제다. 짐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틀렸습니다."
*나, 과학자구나! 이제야 좀 알겠네. 내가 과학을 써야 할 시간인 거야. 좋아, 천재 두뇌씨. 뭐라도 생각해 보라고!... 나는 배고프다. 실망이다, 두뇌야.
* "외부 세포막을 나노 주사기로 관통했습니다.""막대기로 찔렀다고요?""아뇨!" 내가 말했다. "무, 맞긴 맞아요. 하지만 아주 과학적이 막대기를 가지고 아주 과학적으로 찔렀습니다.""막대기로 찔러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까지 이틀리 걸리신 거네요.""당신 진짜... 조용히 하세요."
* 똑 똑 똑. 아니, 안 무서워. 집에서 12광년 떨어진 우주선 안에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는 건 완전히 정상적인 일이야.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는 엉망진창이다. 진화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