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난해하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곤 한다. 각 분야가 전문적으로 발전하듯이,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기에 단순한 인상을 넘어서는 감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하다. 미술 관련해 많은 책들이 있고, 요즘은 대중적이고 친절한 안내서도 여러 권 출간되어 선택의 폭이 넓기에 각자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선택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입문서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조금 더 깊이를 추구하고 싶지만, 너무 전문적이거나 혹은 방대한 내용이 부담스럽다면, 임영방 저 <<현대미술의 이해>>를 독서 후보 리스트에 넣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80년대가 시작되기 전인 1979년 8월 1일에 출간되었다. 나는 80년대 이전에 쓰여진 인문서에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자의 문학적 내공이다. 한국에는 숭문 전통이 있었고, 많은 저작물에 문향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유려한 문체나 적절하고 멋진 어휘 선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저자의 스타일에 따라 절제된 표현에 풍부한 문학 레퍼런스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학, 역사, 철학 즉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에서 문학은 언어가 주축이 되는 학문이자 예술인만큼 그 역할과 비중이 컸다. 이 책은 문학, 역사, 철학(미학) 영역을 아우르며 현대미술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고 이 점이 큰 매력이다.
이 책은 미술사와 미학 사이에 위치하면서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담고 있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사로 구체적 작품과 작가, 예술사적 사건과 시대배경 등을 파악하고, 미학으로 각 시대의 근간을 이루는 사유와 예술적 탐구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학 레퍼런스는 언어가 갖는 정교한 표현력으로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저자는 빅토르 위고, 보들레르 등 대문호의 문학 작품과 그들의 예술에 관한 서술로 자신의 현대 미술에 관한 미학적 탐구를 풍성하게 조직해나간다.
필자는 저자 서문에서 ‘필자 나름대로 현대미술의 복잡한 내용과 성격을 중요하다고 믿어지는 관점에서 지적하고 올바른 해석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듯이, 현대미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탐구해 가는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그 사유의 여정이 텍스트에 반영되어, 한편으로는 맥락에 따라 곳곳에서 내용이 중복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의 독자적이고도 치열한 탐구가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당대 미술의 근간을 이루었던 분위기와 사유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예를 들어 모네의 경우, 인상파 화가로 다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세잔느와 비교 고찰이 된 후, 뒤샹의 회화에서 다시 소급되어 비교 고찰이 되는데 매우 정교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리 잡은 심층적 이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준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현대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출발해본다면 현대미술 감상을 통해 우리는 의미 있는 시간을 경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이 책의 안내를 받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연원을 깊이 있게 만나봄으로써, 현대미술이 걸어왔던 길과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지금 이 시점에서 확인해보는 것은 상당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임영방은 파리 소르본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냈다. 미술관의 대중화를 열고 탄압받던 민중미술을 조명하여 미술계의 통합을 도모한 점이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 타계.
“프랑스 파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65년 서울대 미대 강사로 시작해 이후 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당시 불모지였던 미학을 학문으로 정착시는 데 기여했다. 고인은 77년 창간된 <미술과 생활> 주간을 맡아 미술과 사회의 관계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미술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92년부터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그는 93년 고구려 고분벽화 등을 소개한 <아, 고구려 전>을 통해 역대 최다 관객인 360만명을 동원하는 등 미술관 대중화를 선도했다. 또 안팎의 논란을 무릅쓰고 94년 2월 <민중미술 15년 전>을 열어 70~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 문화로 탄생한 민중미술을 집중 조명했다. 민중미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관련 전시회를 여는 등 우리 민중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도 계속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 교수(가천대 회화과)는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미술관의 대중화 시대를 열고, 국립현대술관에서 정부의 탄압 대상이던 민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미술계의 통합을 이룬 것은 임영방 선생의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95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국제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렀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만드는 데도 큰몫을 했다. 그는 <서양미술전집>, <현대미술의 이해>, <미술의 세 얼굴>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특히 2011년 낸 <바로크-17세기 미술을 중심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바로크를 심도깊게 들여다본 책으로 평가받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76290.html#csidx2473cbd57282c558e7cfffcfc88c32e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시적이고 변화하기 쉬운 것이며 우발적인 것이고 잡히지 않는 것이며 예술의 한 국면으로서 또 다른 국면은 영원하고 부동한 것이다"(보들레르, <<미학적 탐구>>), 이 말의 뜻은 시대적인 미, 또는 시대성이 반영된 표현은 어느 시대든지 있었고 그것은 시한성을 가지며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 말은 고전적인 미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낭만주의도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이 갖는 시대적 표현의 근거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