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
  • 그러나 아름다운
  • 제프 다이어
  • 13,500원 (10%750)
  • 2013-04-25
  • : 313

제프 다이어의 두 번째 책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명확한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실 두 번째 번역본은 소설이 나왔으면 했다. 저자가 <지속의 순간들>에서 보여준 필치에 본격적인 상상적 서사와 묘사가 개입된 글을 맛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그러나 아름다운>은 재즈에 관한 책이다. 물론 애초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않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픽션의 성격을 짙게 띤다.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뗀다. “[이 책은] 일종의 허구라 할 수 있는, 상상적 비평imaginative criticism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상상적 비평”이라. 흥미로웠다. 이 글쟁이가 풀어내는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가 궁금해졌다. 역시나 평범한 에세이는 아니었다. 책 소개 글에 언급된 재즈 뮤지션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 그들 삶 속에 놓인 가장 아프고 노골적이며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절절한 묘사였다. 중간쯤에서 나는 앞으로 돌아가 지나쳤던 한 인용문을 다시 더듬었다. “나는 그들을 그들 자신들이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 본다…….”


재즈라는 음악은 다른 장르와 절묘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마음 가는 대로 말해보자면, 재즈는 블루스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와 자기 자신을 한껏 방만하고 흐릿한 상태로까지 끌고 나가서는 마치 약에 취한 것마냥 어기적거리는 장르다. 아마도 제프 다이어는 재즈의 이러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재즈의 작법 사이에서 그는 어떤 매혹적인 유사성을 발견한 건지도 모른다. 재즈에 탐닉했던 하루키처럼 제프 다이어가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서 유독 재즈에 구미가 당겼던 이유도 어쩌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그러한 심증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봐, 재즈에는 항상 이런 게 있어. 다른 예술 장르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거야. 재즈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소리를 가질 수 있어. 다른 장르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특별하거나 유별난 점들을 다리미로 쫙쫙 펴듯 없애버렸지. 만약 글을 쓰는 자들이라면 그들은 철자법을 지켜야 하거나 구두점을 찍어야 하거나 하는 까닭에 이런 것을 할 수 없지. 그림을 그릴 때 꼭 직선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봐. 철자법이니 직선이니 하는 것들은 재즈와는 필연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어. (중략) 재즈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도 있고 그릴 수도 있지.”(81)


이 책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전통, 영향, 그리고 혁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후기(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끝난다. 마치 몽롱한 아지랑이로 가득한 사막 끝자락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마지막 후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면, 그제야 비로소 저자가 서두에서 어떤 맥락에서 ‘상상적 비평’이란 말을 쓴 것인지 이해가 간다. 비평 그리고 재즈에 관한 소론을 담은 이 후기는, 넓게 봤을 때 ‘예술을 다루는 예술’의 근본(속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하여 음악 비평에 대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던 나를 또다시 비슷한 고민의 계곡으로 밀어 넣는다.


결국 제프 다이어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비평이기도 하”며 “모든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은 ‘이들이 존재하는 맥락, 그리고 이들에 선행하는 예술에 대한 가치 판단과 설명적인 반성을 포함한다.’(조지 스타이너, <그리스도의 실재>)”(290) 아마도 이 책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저자의 관점에서는 레스터 영부터 듀크 엘링턴까지 사연 많은 음악인들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예술화되어 하나의 비평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최고의 독법은 예술”(291)이므로, 제프 다이어는 그 생각을 이 책을 씀으로써 실현시킨 것일 테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일종의 형식 실험을 통해 자신의 예술론을 설파한 ‘예술이자 비평’이 된 셈이다. 내게도 <그러나 아름다운>이 흥미로운 실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